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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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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9-15 02:43

연중 24주 화(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2,360
김오석 라이문도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요한 19,25)

 

성모님은 십자가 곁에 서 계셨다. 칼 한 자루가 마리아의 가슴을 꿰뚫은 성화도 있다.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아기를 통해 모든 민족에게 비칠 구원의 빛을 찬양하던 시므온의 예언은 십자가 아래서 실현된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가 2,35)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함께 하신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날이다. 성모님의 고통은 아들의 죽음 때문에 한 어머니가 겪는 고통만은 아니다. 마리아의 고통은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복종하는 것을 배우신”(히브 5,7-9 참조) 그리스도의 고통과 동일하며, 우리로 하여금 그 고통을 바라보고 묵상하도록 이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겪는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깨닫는다.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함은 그분의 사랑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이웃의 고통에 마음을 열어 함께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고통의 어머니 마리아는 우리 이웃의 고통을 통해 늘 우리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모님의 7가지 고통(성모칠고)에 대해서 알고 있다. 시메온이 예언했을 때, 이집트로 피난 갔을 때, 예수님을 잃었을 때,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십자가 아래 섰을 때, 죽은 예수를 품에 안았을 때, 그리고 예수님이 무덤에 묻혔을 때가 바로 그것이다. 성모칠고는 다름 아닌 우리 삶의 고통을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통은 우리에게 온전한 인간이 되는 과정이 순탄치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가슴 아프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하고, 원치 않은 외로운 타향살이를 감내해야 하고, 자식들의 실패나 방황과 비행 때문에 가슴앓이를 해야 하고, 경제적 실패로 한숨과 좌절의 세월을 감내해야 할 때도 있다. 사랑하는 이의 질병과 고통 받는 모습을 어쩌지 못하고 그저 바라봐야만 하는 무기력을 한탄할 때도 있으며,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가족, 특히 자녀들의 주검 앞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 고통을 통해 우리는 삶의 그릇된 환상과 결별할 수 있으며, 고통 없는 사랑은 없음을 깨닫게 된다. 고통 없는 삶은 없으며 고통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끄는 은총임을 감지할 수도 있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가로지를 때 만나게 되는 하느님은 감미로운 분이 아니라, 골수를 파고들어 내 마음을 뒤엎고 내 삶의 전부를 뒤흔드는 그런 하느님이심을 알게 된다.

 

십자가 곁에 서 계신 성모님은 당신 아들 예수님의 주검을 당신 가슴에 묻고서 우리가 겪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함께 겪고 계신다. 고통의 어머니는 고통을 부정하지 말라고, 그저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지도 말라고, 철없는 아이처럼 굴지도 말고, 술이나 환각제에 의존해서도 안 된다고 우리에게 호소하시면서 오늘도 그곳,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서 계신다. 십자가에서 내린 아들 예수님을 당신 품에 안고 계신다. 당신 아들 예수님과 함께 고통을 겪으시며 우리를 초대하신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수많은 십자가 곁에 서 있으려면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당신과 함께 서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오늘은 우리도 십자가 곁에 서서 예수님의 고통과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며 우리가 겪는 고난을 통해 하느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은총을 청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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