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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9-16 22:03

연중 24주 목요일

1,307
김오석 라이문도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루가 7,37-38)

 

방 안 가득 은은하게 퍼지는 향유의 그윽한 향기가 느껴진다. 동시에 살짝 입 꼬리가 움직이던 예수님의 미소가 이내 껄껄대는 웃음소리로 바뀌어 방 안을 가득 채운 향유의 그윽한 향기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복음서 어디에도 예수님이 웃으셨다.”는 대목은 없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오늘 이 복음의 장면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웃으셨다. 간지러워 웃으셨고, 기뻐서 웃으셨다. 그렇게 생각되지 않은가?

 

시몬이라는 바리사이의 집에 초대받은 예수님께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실 때 였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죄인으로 낙인찍힌 동네의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치에 서서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아마 자신의 전 재산이었을 귀한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어 발라드렸다. 그리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는 예수님의 죄 사함과 용서, 구원을 선사받는다. 들어올 때는 죄인이었으나 나갈 때는 향유의 향기로 흠뻑 젖어 세상과 마주하는 여인! 얼마나 멋진 장면인가!

 

죄가 많은 곳에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도 넘쳐흐른다. 스스로 자신이 죄 많은 존재임을 인정하는 사람은 매달릴 곳이 하느님 밖에 없다. 하느님 앞에 무릎 꿇고 흘리는 눈물방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러므로 잘못한 것이 많아 뭇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사람조차 무시하고 욕하고 외면하지 말라. 그는 어쩌면 하느님의 더 큰 사랑을 누릴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다. 회개하기만 한다면.

 

경건한 바리사이인 시몬은 자신이 깨끗하다고,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예수님은 이렇게 지적하신다.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고, 입 맞추지도 않았으며,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지도 않았다.”(루가 7,44-46 참조) 스스로 깨끗하고 올바르다고 자처하는 사람은 회개할 것이 없는 사람이다. 예수님에 대한 철저한 추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무릎 꿇고 눈물 흘려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용서하시고 당신 품에 안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모른다. 용서받은 뜨거운 체험이 없기에 용서하는 기쁨을 알지 못한다. 건강한 사람은 의사가 아쉽지 않다. 의사는 병든 사람에게만 구원이다.

 

안식년을 지내던 20134월 한 달을 꼬박 산티아고 가는 길’(Camino de Santiago)을 걸어서 순례한 기억이 새롭다. 출사표와 비슷한, 첫 날에 쓴 일기 한 부분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보여드린다.

 

사제! 그 이름의 본질이 드러나는 삶을 살고 싶다.

무절제와 위선과 죄악의 삶이 아니라,

이기적 욕심과 편안함의 추구가 아니라,

진정한 봉사,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

그리고 진실된 기도를 바치는 삶을 살고 싶다.

 

지난 세월의 죄에 대한 참회와 보속으로 걷는 길이다.

스스로의 정화와 비움을 청하며 걷는 길이다.

깨달음과 변화의 가능성을 믿으며 걷는 길이다.

그 분의 빛 안에 충만하게 머물길 기도하며 걷는 길이다.

스스로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길 청하며 걷는 길이다.”

 

나는 죄인이었다. 울면서 걸었다. 몸이 힘들어서 울었고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서 울었다.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순례자의 기도를 수천 번, 수만 번 부르짖으며 걸었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아직도 여전히 죄인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예수님의 발에 눈물 흘려 그 발에 입맞춤해야 할 때다. 더러움이 거룩함에 닿아 깨끗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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