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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9-22 02:55

연중 25주 화요일

1,976
김오석 라이문도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가 8,21)

 

하느님 나라 안에서 이루게 될 새로운 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한 예수님의 선언이다.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님과 일치해 살아가는 새로운 가족에 관한 대담한 말씀이다.

 

육친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와 자매를 외면하고 사랑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아니다. 그 소박하고 좁은 경계를 훌쩍 뛰어 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하느님 나라는 사랑으로 연대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바라보는 나의 시야와 만나고 접촉하는 사람들의 원(, cicle)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는 살아있는 운명공동체다. 혈연의 가족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타자가 포기할 수 없는 진리와 사랑을 씨줄과 날줄 삼아 이루는 하나의 살아있는 그물망이다. 이 그물망 안에서 너와 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 새로운 가족을 이룬다.

 

진리인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깨달음을 열망하고, 깨달은 진리를 따르려 애쓰는 이들을 찾는 노력은 매우 소중하다. 함께 맞잡은 너와 나, 나와 또 다른 너, 또 다른 너와 너의 손이 끝없는 연결고리가 되어 세상을 감싸 안을 때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우리들의 형제자매 공동체의 확장을 위한 여정이 마무리된다.

 

누군가를 공동체에 받아들이는 조건은 그 사람의 진리에 대한 태도에 달려있다. 그는 진리를 사랑하는가? 진리를 간직한 사람인가? 진리를 실천하려 애쓰는가?

내가 공동체에 받아들여지는 조건도 당연히 같다. 수용하고 수용되는 기준은 오직 진리인 하느님 말씀의 간직여부, 그 말씀에 대한 실천의지와 구체적 행위에 달려있다. 하느님의 새로운 가족을 이룸은 우리 각자의 능동과 수동이 함께 작용하는 실재다. 진리의 사람을 알아보는 일과 내가 진리의 사람이 되어주는 일이 동시적으로 진행된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우리의 처지에서는 지금 현재 나의 눈과 관심이 가닿을 수 있는 장소와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진리의 사람을 모두 다 알 수 없지만 그곳에 있는 한 사람의 지인을 매개로 다른 또 한 사람을 만나고 알 수는 있다. 내가 세상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을 다 어쩌지 못하지만 나의 그물망 안에 있는 어떤 이의 매개로 나와 가장 가까이 있었으나 보지 못했던, 한 사람의 가난한 이를 도울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말만하는 것으로는 형제요 자매라고 부르는 그 호칭에 쓸데없는 부하만 가중시킬 뿐이다. 그 본래의 의미는 빛바랜 개살구처럼 되고 만다.

 

모든 사람을 다 끌어안으려 함은 실은 아무에게도 나의 가슴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거부의 다른 표현이다. 나의 시선과 관심의 크기는 나의 인격의 크기와 정비례한다. 발밑에서부터 시작하되 세상 끝을 바라보는 시선을 간직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반복될 때 결국 세상 끝까지 바라보고 세상 끝에 있는 이들과 사랑과 연대의 공동체가 가능해진다.

 

오늘은 등잔 밑의 어두운 부분, 내 삶의 자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와 혈연의 형제자매들만이 맺는 사랑의 감성을 키워가는 행복한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다.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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