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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9-23 02:55

연중 25주 수(성 비오 사제 기념일)

2,022
김오석 라이문도

길을 떠날 때에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마라.”(루가 9,3)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는 예수님의 선교여행 준비물에 대한 지침이다.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마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이루는 일에 필요한 것은 세상이 선호하는 문명의 이기(利器)들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지팡이도 여행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복음 선포와 하느님 나라를 이루는데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뜻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사명에 대한 인식과 예수님과의 온전한 일치와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능력이다. 한마디로 말해 제자들이 지니고 가야 할 참다운 여장의 핵심은 오직 하나 그리스도 그분뿐이다.

 

오늘 길 떠나는 그대

어깨에 멘 짐이 가벼울수록 발걸음은 흥겹다.

여정의 중간에 생겨날 숱한 가능성을 모두 대비하려는 마음일랑

지극히 인간적인 안전 욕망일 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이리저리 고개 숙이는 것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함이 아니듯

가벼울수록 거센 폭풍도 그저 얼굴을 어루만지는 친구.

 

그리스도를 품고 길 떠나는 그대

신뢰와 의탁의 일상이 되게 하라.

생겨나는 모든 일을

그저 받아들이고 즐기며 관조할 수만 있다면,

길은 그대에게 놀람이요, 신비요, 기쁨이며 감동이리.

아무 것도 지니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지니고 있는 그대의 길 떠남은 축복이며 영원이다.

 

땅 끝이 눈을 감는 그대 길의 끝자락,

발가락 매듭마다 피어나는 붉은 꽃의 향연,

손가락 마디마다 켜켜이 쌓인 땀방울의 보석,

가슴 속 뜨거운 사랑의 불꽃 살며시 꺼내들고

두 팔 벌려 기다리는

그분의 품에 날아오르게 되리.

빈 손, 빈 주머니가 그대의 날개 되어.

 

매일 길 떠나는 우리들의 인생이다. 오늘 나의 여장은 어떤가? 자유인가?

 

무겁게 달라붙어 나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작 필요하지 않는 수많은 물건들을 정리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한다. 마음의 욕망을 내려놓는 오늘이었으면 한다. 그리스도 그분을 내 안에 담는 일에 열성을 내는 오늘을 이루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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