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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9-25 00:29

연중 25주 금요일

2,074
김오석 라이문도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루가 9,20)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문이다. 정답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다.

답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 답이 마음 속 깊은 곳, 존재의 심연에서 터져 나오는 각성과 체험의 열매로서의 대답인가가 더 중요하다.

 

나는 누구인가?’ 정체가 도대체 뭐냐는 질문이다. 뭐라고 대답하면 가장 정확하게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일까? 이름을 말할까 아니면 가족관계 안에서 나의 위치를 말할까? 나의 신체적 외모의 특징을 말하면 될까 혹은 직업이나 사회적 직책을 말할까? 아니면 성격이나 취미 혹은 가슴 속에 담긴 포부를 말할까? 세계관이나 인생관을 말하면 될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주~욱 나열하면 내가 누구인지 밝히 보여줄 수 있을까?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되돌아보면 답이 나온다. 내가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면 이것을 취할 것인지 버릴 것인지, 상대를 따라갈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 상대를 닮을 것인지 아니면 미워할 것인지가 분명해진다.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은 결국 관계성에 관한 질문으로 환원된다. 내가 무슨 일과 연관을 맺고 있는지, 내가 어떤 사람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함께 걷고 있는지를 보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과의 운명적 만남과 관계맺음으로 이미 정체성이 판가름 난 사람들이다.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가 그것이다. 그리스도인다움을 온전하게 살고 있느냐는 각자 인생의 충만함과 연결된다. 예수님과 결정적 만남(세례)을 이뤘지만 그분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신명나는 삶을 살기 어렵다. ‘예수님 손바닥 위 손오공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도망가려 해도, 잊으려 해도 그리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항복해야 평화와 행복이 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전부라면 그분이 하신 말씀, 행동, 속마음까지 송두리 알아야 한다. 그래야 무릎 꿇고 항복할 수 있다. 그분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면서 그분에게 시간을 내드리지 못하면 고백은 가짜다. 그분을 알려하지 않는 것이고,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도 하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게으름에 포박된 우리의 뻔뻔함을 반성해야 한다.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 그분이 원하시는 하느님 나라를 나도 그리고 살아야 하며, 그분이 만나셨던 사람들을 나도 만나야하고, 그분이 짊어지셨던 고난의 십자가를 나도 짊어져야 한다. 그것이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고,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요, 하느님의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나에게 걸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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