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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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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9-25 23:56

연중 25주 토요일

2,024
김오석 라이문도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루가 9,44)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루가 9,45)

 

사람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 사람에게 사람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 역사가 여실히 그 사실을 증언한다. 20세기만 보더라도 1차 세계대전에서 사망 930만 명, 부상 2,300만 명, 2차 세계대전에서 사망 3,700만 명(민간인 1700만 명), 부상 1300만 명이다.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로 600만 명의 유대인이 죽었다. 한국 전쟁에서 420만 명, 베트남 전 350만 명, 캄보디아 킬링필드 200만 명이 죽었다. 그리고 이라크를 비롯하여 아직 진행 중인 중동의 국지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등. 오늘도 쉬지 않고 미디어들은 전 세계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살인 사건들로 넘쳐난다. 사람이 사람을 죽여야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듯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인간의 목숨은 한낱 파리 목숨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들에겐 양심의 방이 없거나 있더라도 작동하지 않는가 보다. 악의 일상성에 빠져 자신이 하는 일이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감지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신을 몰아내고 이성(理性)으로 계몽된 인간이 세상의 진보를 완성하리라는 장밋빛 환상은 20세기에 그 막을 내렸다. 역시 사람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사람뿐이다.

 

사람의 아들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진다는 말은 사람의 아들인 예수님이 사람들에 의해 죽을 것이라는 뜻이다. 제자들은 도통 이 말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산위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여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하느님의 신비를 보여주신 분(루가 9,26-36), 하느님다운 권능으로 죽을 자를 살려내고 호수와 바람을 꾸짖고 말 한마디로 사탄을 몰아내시던 분이 사람들의 함정에 빠져, 잡히시고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사실 사람들의 교활함과 잔인함과 뻔뻔함 앞에서는 하느님도 어쩔 수 없다. 하느님도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신다. 그저 맥이 쭉 빠져 너털 주저앉으실 수밖에 없다.

 

하느님의 신비를 체험해 본적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의 고통과 십자가의 신비를 알아듣지 못한다. 사람의 죄악과 마주하여 그 죄악을 이기는 길이란 그저 자신을 제물로 내놓고 그 죄악의 제물이 되어 도살당하는 어린 양이 되었을 때이다. 그때에야 죄악의 본질을 드러내고 이길 수 있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다.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라. 음모를 꾸미고 협잡하여 타인을 괴롭히고 고통 주는 사람은 사실 하느님을 괴롭히고 고통주고 있음이다. 알면서도 다른 사람의 죄악에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는 사람이 있거든 그를 주님으로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청하라. 세속의 가치에 물들어 있으면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표징들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한다. 이해할 수 없다.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가르쳐주어도 깨닫지 못한다. 그렇게 살고 싶은가? 아니라면 복음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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