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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9-29 23:05

연중 26주 수(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2,100
김오석 라이문도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가 9,62)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의 자세에 대한 가르침이다. 예수님을 따른다 함은 하느님 나라를 전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을 스승으로 모신다는 뜻이다. 십자가 죽음이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아닌 순교의 의미가 담겨 있다. 죽고 싶다고 해서 쉽게 순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죽을 의도가 없어도 당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죽음의 문제다. 그렇다면 십자가 죽음의 문제는 개인의 소관이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 됨은 우선적으로 하느님나라를 전하고 이루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 첫째다. 그러나 그 소명을 이루는 길은 머리 둘 곳조차 없는 떠돌이 가난한 방랑자의 여정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루가 9,58 참조)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지나간 자신의 삶에 애착을 두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남녀는 사랑하는 사람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콩깍지가 씌었다!’는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사랑은 상대의 과거 흔적도 그리고 현재의 부족함도 충만으로 변형시킨다.

 

예수님의 부르심의 음성에 귀가 열리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는 것은 2차적, 부차적인 것으로 바뀌고 오직 스승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에 열광하고 그분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달라.”(루가 9, 59)는 요청은 아직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미진한 모습일 뿐이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에게 맡겨라.”(루가 9,60)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은 기존의 가치관을 뒤엎고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해야 한다. “과거는 흘러갔다! 뒤돌아보지 마라. 소금 기둥으로 변할라. 앞만 보고 걸어라. 예수님에게서 시선을 떼지 말라.”는 요청이다.

 

세상의 유혹은 매혹적이고 질기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우리의 시선은 순간의 방심에도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처럼 흩어져 버린다. 앞만 보고 정진할 수 없는 우리의 처지가 딱하기는 하나, 매일 아침 새롭게 어제를 잊고 손에 쥔 쟁기에 힘을 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인간 존재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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