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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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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10-03 00:41

연중 26주 토요일

2,002
김오석 라이문도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루가10, 21)

 

파견된 일흔두 제자가 돌아와 기쁨에 겨워 외친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무릎을 꿇고 복종합디다!”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일흔두 제자들이 어떤 인물인가는 12제자들의 면모를 일견해보면 충분히 간파할 수 있다. 어부, 세리, 젤롯당 등 갈릴래아의 가난하고 배움이 부족한 민중들이었다. 일흔두 명의 제자들도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 즉 당시 시대와 사회 문화적 조건에서는 괄시받고 천대받는 하층민에 해당되었을 것이다.

 

하느님의 일을 행함에 있어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이들은 그 신분의 귀천이나 지식의 높고 낮음에 따라 그 능력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순정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의탁하고 그분의 도구로 자처하는 자에게는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이 예수님을 통하여 당연히 함께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기뻐하고 놀라고 경탄하는 일흔 두 제자들의 환성에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감사의 화려한 찬미가를 부르신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선발되는 예수님의 기준은 지혜롭다는 사람이나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하느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몸을 숙이는 가난하고 미소한 이들이 오히려 제자 됨의 기준이다. 인간이 자랑하는 과학과 지식은 하느님의 신비가 드러내는 놀라움에 필요한 경탄을 앗아가 버린다. 이 세상에서의 부와 풍요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으로 충분하다고 믿고 자기만족 속에 자신을 가두어 버린다. 더 이상 아쉬운 것도 기대할 것도 없는 인생이 되어 희망 없는 현재에 머물며 허무한 것의 탐닉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작고 연약한 이들은 늘 자신의 한계를 감지하며 살기에 한계 너머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과 위대함을 우러르며 희망한다.

 

세상의 부와 지식을 쌓는 것이 예수님을 스승으로 고백하는 제자들의 길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일용할 양식을 청하고,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드리며, 작고 연약한 이로 머물러 있기를 청해야 한다. 일상에서 펼쳐지는 하느님의 놀라운 신비를 알아보고 경탄하는,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청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며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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