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0-05 23:32

연중 27주 화요일

2,052
김오석 라이문도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루가 10,39)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가 10,42)

 

사람이 살아가는데 무엇이 소중한가에 대한 답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찾는다면 백인백색이 될 것이다. 물론 상황논리에 기초한 그때그때의 답을 찾는 것도 필요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모든 답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오늘 복음이 말하는 삶에서 가장 소중한 필요한 것 한 가지라는 것이다. 여기서의 들음은 당연히 듣고, 새기고, 실천함으로써 완성되는 그 들음이다.

 

예전에 어느 본당 신부로 있을 때, 본당이 소재한 지역의 시장(市長)과 식사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말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딴 짓하며, 마음은 이미 딴 곳에 있는 상대방의 태도를 감지하고서 머쓱하고 기분이 상해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저 인사치레로 만나 상대의 말을 건성건성 흘리는 대화는 재앙이다. 이후 그는 내 기억에서 삭제되었다.

그러나 한편 내 자신에게로 돌아와 성찰하면 나 자신 역시 내가 삭제해버린 그와 다르지 않다. 내 자신의 일에 푹 빠져 있어 얼마나 자주 다른 사람의 말을 흘려듣고 건성건성 건너뛰었던가! 나 역시 그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삭제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오싹하다.

 

마리아와 마르타의 이야기를 관상(기도)과 봉사(활동)중 관상이 더 소중하다거나, 관상과 봉사의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마르타가 식사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끼니를 걸러야 할 것이라며 마르타의 손을 들어 주는 사람도 있고, 예수님이 당신 옆에서 당신 말씀에 귀 기울이며 아양 떠는 마리아를 더 예뻐하셔서 마리아의 손을 들어 주셨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일은 다 소중하고 중요하다. 손님 접대 준비를 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당연히 살덩이를 몸으로 지니고 살아가는 물적 존재인 인간에게 먹는 일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그렇다고 먹는 일에만 집중하고 살면 돼지와 다를 바가 없다. 사람 사이(人間)라고 풀이되는 한자말에서 보듯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관계이며 관계는 소통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일이야 말로 인간의 본질에 속한다. 더구나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 일은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오늘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혹은 소중한 상대에 대해서는 시간을 할애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귀 기울여 상대의 말을 듣는다. 반면 그렇지 않은 상대에 대해서는 할애하는 시간도 현저히 줄고 말도 대충대충 듣는다. 사랑하는가? 시간을 듬뿍 할애하고 귀 기울여야 한다.

 

하느님(예수님)을 사랑하는가?

이웃을 사랑하는가? 특별히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는가?

내 아내를, 내 남편을, 부모님을, 자녀들을 사랑하는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