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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0-10 00:13

연중 27주 토요일

2,092
김오석 라이문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가 11,28)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복음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가득하다. 말씀이 없어서 아니라, 말씀을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라 타성과 익숙함과 나약함과 게으름과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열정 부족 때문에 나의 삶은 그저 그렇다. 세상과 하느님의 회색지대를 떠도는 생명 없는 그림자처럼 흐느적거린다. 이 한 몸 건사하고자 요리 빼고 저리 피하는 가운데 세월만 흘러간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킨 이들을 우리는 성인, 성녀라 칭하고 존경과 함께 그 모범을 따르려 애쓴다.

 

빈센트가 굴뚝 청소부처럼 온몸에 검댕 칠을 한 것은, 광부들과 똑같이 되고자 했으며 그들의 현실 속으로 들어가고자 했던 진지한 노력이 순진하게 드러난 것이다. 빈센트는 광부들과 구별되고 싶지 않았고, 그들과 자기 사이에 놓인 그 어떤 격차도 없애버렸다. 광부들에게 속하고 싶다는 욕구가 굉장히 커서 그들과 똑같이 되고 싶었다. ... 그는 광부들이 처한 비참한 상황 속에 들어가 그들을 돕기 위해 행동해야 했다. 가진 돈과 옷은 그곳에 도착하고 며칠 되지 않아 다 나눠주었다. 그 후 그는 다 해진 군복 상의와 포장용 천으로 직접 옷을 만들어 입고 다녔다. 그는 그리스도의 종에게 신발은 호사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곳의 사정을 알고 난후에는 초라한 오두막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거기에는 가구나 필요한 설비가 하나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짚으로 채운 자루를 요로, 윗옷을 이불로 썼다. 길바닥에서도 자주 잠을 잤다. 배가 끔찍하게 고프지 않은 한 그는 마른 빵과 적은 양의 밥 그리고 시럽만 먹었다. 광부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선포할 내적 권리를 갖기 위해 그는 광부들과 똑같이 비참한 형편으로 살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는 살기 편하니 그럴듯한 설교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라고 광부들이 생각하는 게 끔찍이도 싫었다.

그것은 미친 사람의 행동이었는가? 빈센트는 그가 미쳤다는 비난에 대해 주님이신 예수께서도 미친 사람이었다.”고 답했다. 사실 그의 내면에는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와 같은 열정이 타오르고 있었다.”(“빈센트 반 고흐, 태양을 보다발터 니그 지음. 윤선아 옮김. 분도출판사. 31~32 페이지)

 

고흐가 젊은 시절 벨기에 남부 탄광지역인 보리나주에서 선교사로 일할 때의 장면이다. 내게는 그저 불운의 천재 미술가로만 기억되는 고흐는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삶에 구체화 시킨 하느님의 사람이요 예수님의 제자였다.

언젠가 동료 작가가 삶의 신조가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고흐는 이렇게 답변했다고 한다.

침묵하고 싶지만 꼭 말을 해야 한다면 이런 걸세.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산다는 것. 곧 생명을 주고 새롭게 하고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 불꽃처럼 일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하게, 무언가에 도움이 되는 것. 예컨대 불을 피우거나, 아이에게 빵 한조각과 버터를 주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물 한 잔을 건네주는 것이라네.”(“그대 아직 갈망하는가한상봉 저, 이파르. 288페이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일에 온전히 투신하는 열정을 청하는 오늘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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