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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0-16 02:08

연중 28주 금요일

1,940
김오석 라이문도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 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루가 12,2; 12,4)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언제나 캄캄한 골방을 찾는다.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하지 말아야 할 못된 짓을 계획하고, 다른 사람을 해코지하고, 범죄를 기획하는 일을 대명천지 밝은 태양 아래서 버젓이 행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쌓아 온 자신의 체통과 위신이 손상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기가 하려하는 일들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인식으로 어둠을 찾는 자들은 차라리 소박하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가 후안무치의 악행을 저지르면서 온갖 억지 논리와 마구잡이 밀어붙이기로 나올 때는 참담할 뿐이다. 그러나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은 살 떨리는 분노가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지만 꾹꾹 눌러버리고는 체념으로 방향을 바꾸기 쉽다.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나의 이익과 무관하다는 비겁한 안도감으로, 혹은 삶의 일상성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의 도구로 삼으면서 말이다.

일상적인 타성과 알맹이 없는 기계적인 반복에 익숙해지면 내적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는다. 내면이 외모와 상응하지 못하면 겉보기의 거짓 영성만이 활개를 칠 수 밖에 없다. 그 끝은 허무할 뿐이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했다. 아무리 붉은 꽃이라 하여도 열흘을 넘기기 어렵고,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이라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두려움과 공포는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때나 겪게 되는 심리 상태다. 손을 편 사람은 자유롭고 평화를 누린다. 누구나 다 맞이할 수밖에 없는 죽음이 목전에 있는 것으로 전제하면 지금 여기서의 다툼과 이익 추구는 개별적 차원에서는 한심한 기력의 낭비일 뿐이다. 결국 공동체 차원의 역사가 그 옳고 그름을 판가름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예수님으로부터 드러난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사랑과 권능과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믿는다. 현세의 삶을 하느님 나라로 이끌기 위해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정성을 다해 자기 몫을 다하되, 그 너머의 영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현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일랑 떨쳐버리고, 삶의 일상성과 안락함을 떠나 육신 외에는 어찌 할 수 없는 어둠의 세력과 두려움 없이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자신들이 행하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태도와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기에 모든 것을 자신들의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의 고단한 대결을 끝낸 예수님은(루가 11,37-54) 떳떳치 못한 음모와 감춰진 진실이란 결국 지붕 위에서 태양의 밝은 빛 한 가운데 던져질 밀랍 인형에 불과하다는 준엄한 가르침을 오늘 복음을 통해 가르치신다.(루가 12,3 참조)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그저 밀어붙이며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우습게 취급하는 권력자들과 지배자들의 자기 성찰과 회개를 기도하며, 하느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역사의 긴 호흡을 생각하며 양심에 간직된 수치심을 회복시켜 주시길 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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