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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0-21 00:24

연중 29주 수요일

2,276
김오석 라이문도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가 12,48)

 

사람이 먹고 입고 잠자고 일하고 만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살아가는 일상이란 실상 고단함의 연속이다. 선천적이고 본성적 욕구(식욕, 수면욕, 성욕)는 외면할 수 없고, 결국 충족되어야만 숨 쉬고 살아가는 생명으로서 자기보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죽는 순간까지 매끼 밥을 먹어야 하는 존재라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일상의 고단함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인간의 멈추지 않는 움직임과 연관을 맺고 있다.

 

공부하는 학생의 고단함은 지식을 얻기 위함이고, 사업가의 고단함은 재물의 증식과 종업원의 안녕을 얻기 위함이다. 직장을 찾는 취업준비생의 고단함은 삶의 안전과 안정을 얻기 위함이다. 주부의 고단함은 가족들의 행복을 얻기 위함이다.

생명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삶의 투쟁에서 고단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더군다나 그 위에 축적과 독점의 욕망이 더해지면 고단함은 이제 고통이 되어 삶을 지배한다. 편안하게 욕망을 채우는 경우는 부모 잘 만나 금 숟가락 입에 물고 태어난 자 아니면 불가능하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배움도 짧고, 재주도 없으며, 직장도 변변치 않아 삶을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 수많은 이 땅의 서민들이다. 삶에 필요한 무언가를 갈망하며 매일 분투노력해도 손에 쥐는 것은 쥐꼬리에 불과한 인생이 어찌 고단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늘 불평불만과 좌절감으로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닐까?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과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늘 길거리에서 주먹 쥐고 시위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른다면 삶이란 끝없는 욕망의 노예로 전락하는 길일뿐이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과 분노를 드러내기 전에 내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가 우선이다. 노랗게 붉게 물든 가을 단풍의 정경을 볼 수 있음에 감사드리고, 걸을 수 있음에, 말할 수 있음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음에 감사드리면 좋겠다.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음을,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음을, 친구들과 차 한 잔 마주하고 담소를 나눌 수 있음을 감사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고통 받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연민의 마음이 솟아나는 자신을, 곁에서 위로하며 기꺼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신을,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봉사하는 자신을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 얼마나 많고 좋은 그 무엇을 하느님께서 내 안에 은총으로 담아주셨는지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눌 것이 하나도 없을 만큼 그렇게 가난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얼마나 풍성한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지 감사할 줄 모르는 인생은 하느님을 모르는 인생이다. 하느님을 모르는 인생은 자기감옥에 스스로 갇힌 죄수의 인생일 뿐이다.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아직 주어지지 않았지만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감사하는 사람이다. 감사하는 사람의 소망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결국 이루어진다. 이것이 감사의 신비요 힘이다.

감사하는 사람만이 관대하게 자기를 열고 하느님의 요구와 다른 사람의 요구에 기꺼이 응한다. 관대하게 자기를 여는 사람의 곳간에는 내어주는 것의 열배, 백배의 하느님 은총이 맡겨진다. 그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이다.

 

많이 맡겼는데도 감사할 줄 모르고 부족하다고 칭얼대며 문을 닫아버리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더 이상 기대도 하지 않으시지만 더 이상 맡길 수도 없음이다. 그런 이들의 풍요로운 외관은 그저 겉옷일 뿐이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허무밖에 없음이다. 그들은 부러움이 대상이 아니라 가엾게 바라보고 기도해주어야 할 대상이다.

 

나 먹을 것조차 부족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놓는 사람의 곳간에 하느님의 배려와 은총이 열배, 백배로 풍성해질 것을 믿는 오늘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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