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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1-03 22:02

연중 31주 화요일

2,250
김오석 라이문도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루가 14,18)

 

초대받은 사람들은 모두 다 초대에 응할 수 없는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으니 밭을 보러가야 한다 하고, 둘째 사람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보러 가야 한다 하고, 마지막 사람은 지금 막 장가들어서 초대에 응할 수 없다 한다. 삶의 일상성에 매여 있는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 좀 긍정적으로 본다면 먹고사는 일의 엄중함이라 할까?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이 그런 것일까?

 

반장 구역장, 주일학교 교사 등 본당 공동체를 위해 봉사 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이제 노령화되었고 조금 젊은 사람들은 다들 한 푼이라도 벌어 가계에 보태려고 일하러 나간다.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판을 벌려도 교우들이 시큰둥하다.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일에 무척 바쁘다. 다른 성당의 좋은 성서강의를 들으러 가고, 백화점에서 교양강좌를 듣고, 친구들 만나 어울리다 보면 정말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 바야흐로 신앙도 개인주의적 신앙생활이 대세를 이루는 느낌이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고, 교회는 새 이스라엘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백성들의 모임으로서 하느님나라의 예표가 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사람들은 왜 이리 바쁘게 사는 걸까? 왜 이리도 정신없이 살고 있을까? 이렇게 넋을 빼앗긴 채 살아도 되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잘못되었다. 거리에 나가보면 눈이 아플 지경이다. 신호등도 무시하고 쏜살같이 달리는 자동차, 무엇에 쫓기는 듯 종종 걸음 치는 사람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서 사방을 살피는 초점 잃은 불안한 눈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무엇이 오늘 우리들을 이렇게 불안과 초조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가? 왜 우리는 이렇게 허둥대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유는 이렇다. 사람들은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잃어버렸고, 세상의 것에 정신을 온통 빼앗겼기 때문이다.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밭을 샀으니, 겨릿소 다섯 쌍을 샀으니, 장가들었으니"하며 귓가에 들리는 하늘의 소리를 애써 외면한다. 하늘의 소리를 외면하고 욕망 충족에만 충실하려는 우리들은 점점 더 하늘로부터 멀어지고, 점점 더 인간의 모습에서 멀어져 짐승을 닮아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욕망을 채우는데 아무리 애써보아도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엄연한 현실은 구원이 욕망 충족에 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숨가쁘게 달려온 인생길을 멈추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다.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매일 삶 속에서 당신의 일을 보여주며 함께 하자고 나의 양심의 방을 통해 부르시는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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