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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1-03 22:06

연중 31주 수(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2,163
김오석 라이문도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가 14,33)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가 14,27)

 

예수님의 오늘 말씀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무척 과격하게 들립니다. 자기 소유를 다 버려야만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다 버리면 무얼 먹고 입고 살아가란 말입니까? 어지간히 먹고 사는 사람들의 당연한 반문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이룬 재물이요, 사회적 지위요, 명예와 존경이며, 가족과 행복인데 다 버리라고 한단 말씀인가? 하며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물에 대한 욕심을 좀 없애라는 뜻이겠지~’ 하며 완화시켜 해석하고 받아들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애써 이런 예수님 말씀은 못 본 것처럼 얼른 지나쳐버립니다.

 

예수님의 일관된 가르침은 명확합니다. 예수님보다 세상의 것을 더 소중하게 움켜쥐고 있는 사람은 제자로서 합당하지 않으며, 하느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세상의 것이 설혹 혈육의 정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라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을 선택하여 제자의 삶을 살기로 한 선택과 함께 그 선택의 결심도 돌에 글자를 새기는 것처럼 확고부동해야 합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가 9,62)

 

신앙을 고달픈 삶의 위로와 축복의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유아적이고 기복적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쯤으로 치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이 위로와 축복에 머무르는 자기 위안과 자기 최면의 도구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영성이 산업화된 요즈음 그런 위로와 힐링은 주변 상가 건물 등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혹은 예수님의 제자라는 말에는 숨 막히는 긴장감이 배어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결의가 그 말에 촘촘히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힘없고 약한 이들, 가난하고 병든 이들, 사회의 바깥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편이 되어주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이 담겨있습니다. 그들을 그렇게 내팽개친 불의한 세상의 사회구조적 악령들과의 싸움에서 목숨을 내놓게 되더라도 뚜벅 뚜벅 그 길을 가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십자가입니다. 모든 것을 버렸다 하더라도 빈둥거린다면 선량한 사람 등쳐먹는 사기꾼이거나 한량이거나 노숙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짊어지지 않아도 될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을 닮으려 애쓰는 제자 됨의 조건입니다. 짠맛 잃은 소금이 이미 소금이 아니듯이 십자가 없는 신앙은 예수님의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생애의 전부이기에 예수님 이외의 모든 것을 돌덩이 보듯 하겠다는 가치관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말에 담겨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현실의 팍팍함을 핑계 삼아, 자신의 연약한 인간적 부족함을 자기 연민으로 하여 한 번 두 번 자기 합리화의 길에 젖어들면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계속 멀어져 갈 뿐입니다. 오늘의 저 역시 그런 처지임을 아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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