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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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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11-10 22:54

연중 32주 수(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1,970
김오석 라이문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루가 17,15-16)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 치유를 받고 성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다시 돌아와 그분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린 사람은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인간의 지성과 기술이 세상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기계적이고 기능적인 관점이 사람에게서 감사의 마음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이는 자기만족과 안락함에 길들여진 무감각이 사람들을 영적으로 시들게 하고 말았습니다. 죄로 무디어진 감수성이 하느님께서 주신 시간과 공간 안에 어우러지는 자연과 사람의 변화와 조화로움 안에 산재하는 아름다움과 선함을 발견하지 못하게 합니다. 감사는 무엇인가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행위의 결과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경이로운 선물임을 경축할 때 저절로 감사의 환성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엊그제 월요일, 쉬는 날의 여유로움을 자전거를 타고 팔당 부근의 한강변을 달렸습니다. 강 건너 만산홍엽의 아름다운 단풍이 눈길을 붙잡았습니다. 저절로 찬미와 감사의 탄성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가을 단풍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 휴일의 여유를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디 일상에서 감사할 일이 한 두 가지일까요. 다만 너무 익숙하고 무디어져 그냥 지나쳐 버리기에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을 뿐입니다.

 

사실 좋은 일에 감사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그조차도 감사의 마음은커녕 자신이 잘나서 이뤄낸 업적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이지만 말입니다. 참 믿음의 사람은 궂은일에도 좌절하지 않고 그 틈새의 순간에 감사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내고 경탄하는 사람입니다. 쉽진 않지만 매사에 그리고 매순간에 감사의 정()으로 훈련이 된 사람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주저앉거나 원망하거나 분노를 터트리기보다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올리게 됩니다.

 

신앙인의 인생이란 늘 감사하다가 마음을 다해 내 생애 전체에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죽음을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 없는 신앙은 껍데기 신앙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만이 늘 기쁨이 넘치고 자유롭고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 열 명 중 치유된 단 한 사람만이 돌아와 감사를 드렸다는 대목은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감사에 인색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가난 중에서도, 와병 중에도, 실패의 혼란 속에서도, 절망의 끝자락에서도 예수님의 도포자락 붙들고 감사의 찬양 노래 부르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생각하고 상상한대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심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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