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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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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11-13 22:45

연중 32주 토요일

2,099
김오석 라이문도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가 18,1)

 

대학 입학 수학 능력 시험이 그저께 치러졌습니다. 수험생 모두의 성실한 노력과 소망이 모두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시험 점수에 따라 한 줄로 줄 세우기를 강요하는 우리나라의 무자비한 입시 경쟁에서 저의 바람이 성사되기는 난망한 일입니다.

 

자녀가 시험을 치루는 학교의 정문 앞에서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며 두 손 모아 비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안쓰럽기 짝이 없습니다. 영국의 BBC방송은 운명의 날이라고 지칭하며 우리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도했다고 합니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좌우되는 것은 불합리하고 반 인권적입니다.

 

아무튼 어머니들의 간절한 기도는 시험 당일만의 표정은 아닙니다. 우리 본당에서도 엄마들의 기도 모임은 시험 100일 전부터 시작되었고,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 기도란 자녀들의 실력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점수를 바라는 기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준비하고 노력한 만큼 실수 없이 제 실력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그런 기도였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바라는 성적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기도의 부족 때문일까요? 그래서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하느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탄식하며 하느님을 등지고 돌아서야 할 일일까요? 아니면 노력의 부족 혹은 명석함의 결핍 때문이라고 자위하고 체념해야 할까요? 여하튼 시험 당일 하느님께서는 무척 분주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제 시험이 끝났으니 자녀들을 위한 기도는 끝났고 해방의 자유를 누리면 되는 것인지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오히려 지금부터 더 정성들여 자녀들을 위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요?

주님, 사랑하는 저희 자녀를 은총으로 보호하시어 세상 부패에 물들지 않게 하시며, 온갖 악의 유혹을 물리치고 예수님을 본받아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가톨릭 기도서에 나오는 자녀를 위한 기도의 후반부입니다. 이 기도문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 마음속으로 이렇게 기도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 다른 아이들은 제 소관이 아닙니다. 다만, 제 아들만큼은 좋은 대학에 가서, 대기업에 취직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게 해주소서. 더 바라옵건대 능력이 된다면 권력과 부와 지위의 정점에 올라 다른 이들의 존경을 받고 행복하고 장수하게 해주소서.”

 

부모님들이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바치고 있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아도 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기복적이고 이기적인 기도는 아직 예수님을 잘 모르는 갓난아기의 옹알이에 불과합니다. 심하게 표현하면 개인의 주술적 행위요 미신에 불과할 뿐입니다. 기도는 그 지향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일꾼의 길은 그리 평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위해 바치는 기도는 일생 동안의 화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의 자녀를 위한 기도는 주님, 저의 자녀들이 어떤 난관과 고통을 겪더라도 하느님의 자녀로서 건강한 영혼과 육신을 보전하면서 결코 좌절하지 않고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세상의 아름다운 변화를 위해 투신하는 하느님 나라 건설의 일꾼이 되게 하시고, 하느님 나라의 참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 그러면 그 기도는 선한 재판관이신 하느님께서 꼭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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