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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1-17 21:27

연중 33주 수요일

1,928
김오석 라이문도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루가 19,26)

 

인간의 존재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 중 하나가 던져진 존재’(被投性:피투성)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사전 이해 없이 그리고 원하지 않았음에도 시공간의 한 지점인 이 지구상에 던져진 존재입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선물로 주어진 존재입니다. 어떤 인생에겐 이 사실이 저주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이런 통찰은 내가 가진 모든 것, 그리고 생명이 있는 한, 만나는 모든 세상 만물이 거저 주어진 은총이 됩니다. 쉽게 말해서 공짜로 얻은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공짜이긴 하지만 하느님의 숨결과 손길로 빚어진 공짜라는 사실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인생을 관조하노라면 나의 것이라고 주장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알게 됩니다. 거저 받은 선물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 정성을 다해 살아가면 공짜가 은총과 축복이 되지만, 공짜라는 생각으로 삶을 허송하면 심판과 징벌의 빌미가 됩니다. 내가 받은 선물로서의 소유와 재능과 시간을 땅에 파묻어 썩게 하는 이기심과 게으름과 나태에 붙들리면, 공짜는 저주와 재앙으로 가는 티켓이 되고 맙니다. 하느님께서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삶이 그분께서 바라시는 전부입니다.


본당 공동체에서 구역반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복음과 생활나누기에 정성을 다하며 형제적 사랑을 키워가는 교우들 대부분은 다른 단체에 속해 있으면서 본당 행사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간에 그리고 자녀들까지 주일학교나 청년 단체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성가정이 많습니다. 참 축복받은 가정입니다.

 

교우들에게 단체 활동을 권하면, 한결같이 시간이 없다.’ ‘지금 말고 나중에 하겠다.’고 답합니다. 하기야 전쟁 같은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노심초사하는 판국에 성당의 봉사나 신심활동이 한가한 신선놀음처럼 생각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당의 사도직 활동과 봉사에 열심인 사람들은 재물과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힘은 쓸수록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힘으로 증폭되어 내 안에서 샘솟는 법이고, 시간은 낼수록 여유와 보람이 생기는 법입니다.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일터와 능력을 주신 하느님은 당신께 바친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능력을 되돌려 주십니다. 각자의 시간과 재능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봉헌하는 것은 삶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고 신명나게 합니다. 잘 관찰해보면 바쁜 사람은 실상 해놓은 것도 없으면서 늘 바쁘다고만 합니다.

 

오늘 아침 눈을 떠보니 또 새로운 하루가 공짜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주지 않으셔도 그만인데... 하느님 고맙습니다. 작은 일에 성실하며 오늘 하루를 당신께 봉헌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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