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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1-21 02:56

연중 33주 토(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1,892
김오석 라이문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루가 12,50)

 

가족이란 혈연으로 맺어진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혹 혈연이 아니더라도(예를 들어 입양의 경우) 오랜 세월 희노애락을 함께 해온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가족은 상호간에 그 어떤 사람보다도 깊숙하게 마음의 통교가 가능한 존재다. 나의 마음 속 내밀한 비밀의 방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바로 가족구성원이다. 들여다보려고 애쓰고 노력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레 눈빛만 보아도, 걸음걸이만 보아도, 앙다문 입술만 보아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의 가족이라는 뜻이다.

 

물론 조건이 있다. 끊임없이 나 아닌 가족의 말과 행동에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가족끼리도 에 대한 관심 없이 오직 를 향한 욕심만을 챙겨 온 가족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가까운 이웃이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보다 낫다는 말이 그것이다. 함께 살아도 서로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남이다. 남을 넘어 때로는 서로가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원수가 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라면, 자주 만나 진솔하게 대화하고 서로의 처지를 걱정해주고 위로해주는 친구나 이웃보다 나을 것이 없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혈육의 관계를 넘어선 새로운 가족을 제시하신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인 가족이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모인 가족의 이름은 교회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를 즐겨하고 틈나는 대로 행동으로 옮기려 애쓰는 사람들이다. 하느님의 뜻이란 복음의 말씀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하고 싶지 않은 일, 귀찮은 일, 고생스러울 것 같은 그런 선택이 하느님의 뜻에 가깝다.

 

교회라는 가정에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를 열망하며 형제자매로 살아가는 사람들끼리도 에 대한 욕심과 이기심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의 기쁨과 행복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서로를 한 가족으로 묶어주는 연대의 끈이고, 내밀한 친교로 가는 가교가 된다. 너에 대한 관심은 예민하고 세밀한 관찰로부터 시작된다. 바로 곁의 형제자매의 어제와 달라진 모습, 표현, 태도는 무엇인가? 다름을 알아채는 일이 관심이고 사랑의 시작이다.

 

본당의 모든 가족들이 서로의 마음을 활짝 열고 두려움 없이 다 보여주는 그런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진 것 모두를 내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기꺼이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혈육의 정을 넘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름으로써 한 형제자매가 된 우리들이 그 본래의 의미를 현실의 삶에서 드러낼 수 있다면 좋겠다.

 

표정 없는 얼굴로 본당 공동체가 무슨 일을 하든지 별 관심두지 않고 귀찮다는 듯 총총 떠나가는 형제자매들을 보게 될 때 마음이 무너진다. 그러나 혼신의 힘을 다해 어르신들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간식을 준비하고, 어려운 일을 당한 형제자매들을 위해 마음과 시간을 나누고 서로 위로하는 여러 봉사자들을 볼 때 마음이 다시 일으켜진다.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땀을 흘리는 이들을 만날 때 숙연해진다. 그들 때문에 신명나게 살아야 할 이유를 새삼 발견한다. 서로 서로를 배려하는 정감어린 따스함이 넘쳐나는 본당 가족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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