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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1-24 23:52

연중 34주 수요일

2,098
김오석 라이문도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가 21,19)

 

여자의 시집살이 고충에 빗대어 남자는 군대 갔다 오면 사람 된다.’는 말이 있다. 여자는 평생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어른이 되어 가는데, 남자는 짧지만 시집살이에 비견될 수 있는 혹독한 군대 생활을 거치면서 성숙한다는 뜻이다.

 

시간을 되돌려 군 생활을 떠올려 보면 아직도 모든 기억이 생생하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고참의 어거지와 집합(소위 빠따를 맡는 시간)의 정례화, 훈련 중 새벽에 꾸벅 꾸벅 졸면서 밥을 먹다가 얻어터진 기억, 24시간 연속 100km 행군 중 졸면서 걷다가 논두렁에 처박힌 일, 힘겨웠던 공수 유격 훈련, 혹한기 훈련 중 너무 추워 냇가에서 얼음을 깨고 반합(야전 군용 식기)을 닦기 위해 물을 묻히는 순간 얼어붙어 버려 난감했던 일 등 밤새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군대 이야기다.

 

통제 사회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남자들의 좌절과 눈물이 함께 버무러져 있는 나의 군 생활이었다. 때리면 맞아야 했고, 단체 얼차려를 주면 잘못한 것이 없어도 눈물을 뿌리면서도 감당해내야 했다. 그러나 육체적 한계와의 싸움, 엄격한 명령체계 안에서의 복종과 순명, 부당한 대우나 억울한 희생 안에서 인내의 시간을 겪으면서 커다란 을 넘을 수 있는 자신감과 지혜를 얻게 되었다.

 

요즈음 모 방송의 진짜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이 나름 인기를 끌고 있다. 군 생활의 경험을 간접적이나마 체험해 보는 예능프로그램이다. 리얼리티를 표방하지만 어찌되었든 설정된 상황들도 많을 것이다. 재미와 추억의 재생을 표방하면서 방송되고 있지만 실제 군 생활은 방송으로 보는 것보다는 더 답답하고 힘들 것이다. 요즘 군대가 옛날과 달리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하지만 군대는 역시 군대가 아닐까?

 

삶이 녹록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기 몫의 고난과 고통을 겪게 되어 있는 것이 인생이다. 거쳐야 할 통과의례로서 그때그때의 시련과 고난을 용케 피하거나 외면하게 되면 철이 덜든 '애 어른'으로 남게 되거나, 불시에 닥쳐오는 인생의 힘겨운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초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언젠가는 피했거나 외면했던 고난을 마주하여 때늦은 고초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분명히 말하지만 고통은 악(惡). 고통은 선()이 아니다. 그러나 고난의 아픔을 체험하지 않고서 자기 앞에 높인 인생이라는 높은 산을 넘을 수 없다. 인생의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

신앙적으로 표현한다면 내게 주어진 고난과 좌절의 십자가가 오히려 나를 깨달음에 이르게 해주는 힘의 원천이라는 뜻이다. 십자가가 은혜다. 은혜로운 십자가에 의해 나는 영적 성숙을 이루고 하느님께 다다르게 된다. 거쳐야 할 나의 몫이라면 어려움과 고난을 피해 도망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간의 고통은 그를 영혼의 완전함에로 이끌어 가는데 그 의미가 있다. 사람이 고통을 당하면서 그저 그 고통에 짓눌려 한숨과 원망으로 지새우고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래서 온전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발판으로 삼지 못한다면, 그 고통은 의미 없는 고통일 뿐이고 그에게 고통은 악()일 뿐이다.

 

지금 힘들고 고통스러운가? 결코 그 고통에 짓눌려 짜부러지지 마시라. 견뎌내는 것이 때론 이기는 것임을, 사랑임을 잊지 마시라.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에 나의 고통을 합체시켜, 그분의 타자(他者)를 위한 내어줌을 기억한다면 나의 고통도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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