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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6-02-15 01:09

사순 1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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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석 라이문도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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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중 유일하게 마태오 복음에만 나오는 최후의 심판 장면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선언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요 하느님 나라라면 그 정답을 알려준 것이다. 실상 우리는 정답을 알고 있는 시험을 치르고 있다. 우리의 인생이 바로 그 시험지다.

 


관심을 두어야 할 곳은 가장 작은이들이 사는 곳이요,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은 가장 작은이들이다. 가장 작은이들이 누구인가? 예전 공동 번역 성서는 이 부분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라고 번역했다. 흔히들 성서 본문이 가리키는 작은이들은 굶주린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 된 사람,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이라고 명확히 지칭한다.

 


그렇다. 우리가 눈길을 돌리고 마음을 주고 사랑으로 헌신해야 할 대상들은 그들이다. 해야 할 당위성이 아니라 그들을 마음으로 품어줄 감수성이 우선적으로 요청된다.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마음이 꿈틀거려야 하고 발과 손이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우리 범인들이 보기에 존경할만한 대단한 분들도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평생을 씨름했다고 자책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사랑이 가슴에서 손과 발까지 오는 데는 또 얼마나 걸릴까?

 


방법은 한가지다. 먼저 손과 발로 사랑의 몸짓을 하는 것이다. 아직 머리속에 이론이 정립되지 않았어도, 가슴이 설레고 눈물을 쏟아내지 못해도 손과 발부터 작은이들을 위한 작은 몸짓을 흉내 내는 것이다. 흉내가 습관이 되고 습관이 마음에 사랑을 움트게 하면 어떨까?

 


주변을 둘러보자. 멀리서 찾으려 하면 안 된다. 작은 몸짓은 가까운 곳에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다. 가족들, 친구들, 직장 동료들 중에 지금 누가 가장 어렵고 곤란한가? 누가 가장 말이 없고 의기소침하고 우울하고 소외되어 있는가? 누가 마음으로 울고 있는가? 그에게 다가가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 보자.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 사랑의 몸짓은 내일 해야 할 미래의 것이 아니다. 멀리 있지 않다. 가장 작은이들, 보잘 것 없는 이들은 뜬 구름이 아니다.

 


정답을 알고 시험을 치르는 이들은 행복하다. 즐겁고 기쁘다. 내어 주는 나의 것이 아깝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다. 오늘이 행복하고 즐겁고 기쁘도록 주위를 둘러보고 발걸음을 재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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