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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이야기마당

2020-03-01 00:41

사순 제1주일 청년 사순특강

920
오정석 라이문도

+ 찬미 예수님!


안녕하세요. 오정석 라이문도 신부입니다. 험난한 시기, 영육 간에 건강하신지요?


사순 시기를 맞이하여 청년들을 대상으로 작은 특강 겸 강론을 준비했습니다만 


꼭 청년이 아니시더라도 함께 하시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본당 홈페이지에도 이 글을 올립니다. 


졸필이며 얕은 영성의 소유자이자 하느님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가여운 하느님 백성에 불과하나 어여삐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2031일 사순 제1주일

 

<강론 겸 사순시기 맞이 강의>

 

사탄아, 물러가라.”(마태 4,10)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부임하자마자 온 세상이 코로나-19(COVID-19)라는 역병으로 들끓고 있는 가운데

저는 주엽동 사제단과 수녀님들, 신학생들과 함께 아무도 없는 빈 성전에서 매일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허전한 느낌이 많이 듭니다. 하느님만으로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하건만

인간인지라 눈에 보이는 것에(아무도 없는 신자석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많이 쓰이더군요

하루 빨리 이 고난의 시간이 지나가길 하느님께 기도드려봅니다

이번 주 강론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계획했던 사순특강을 겸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오늘은 특강의 도입으로서 예수님의 유혹 받으심의 진정한 의미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하루 종일 여러 매체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만 가는 확진자들의 숫자를 공개하는데 재미가 들었나 봅니다

확진자들의 동선을 확인하고 유의하는 건 너무나 중요한 일이지만, 선을 넘어 터무니없는 소식으로 공포를 조장하는 일은 잘못된 일이지요

더불어 바이러스 전파자들에 대한 비난과 분노로 온 사회가 들끓고 있습니다.

(물론 신천지 신도들의 무책임한 행동들은 비판받아 마땅한 행동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있으나 잘못된 행동을 보고도 감싸주기만 하려는 것은 아주 잘못된 태도이지요)

 

세상이 어려울수록, 또 그 어려움이 개인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어질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곤 합니다

이 어려움의 원인을 제공한 개인이나 집단에게 책임을 돌려 자기에게 탓을 찾지 않고

서로 하나가 되어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적 행위이지요

희생양이 된 이들의 해명이나 알리바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희생양 그 자체이며, 이들을 심판하고 정의를 세움으로써 저마다 자신이 정의롭고 결백함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희생양 만들기가 인간의 본성적 태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마디를 더 추가할 수 있다면 이 희생양 만들기는 인간이 가진 최고의 약점 중 하나일 것입니다

(실제로는 100% 밝혀질 수 없는) 돌릴 길 없는 분노의 대상을 확정시켜 이들에게 무자비한 공격을 가하는 이 문화는 

인간이 가할 수 있는 최고의 폭력이자 최대의 야만적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 행위는 특정한 인간이나 집단이 가진 악행이 아닌 가장 거룩하고 선한 공동체여야 할 교회 안에서도 저질러지곤 합니다

역사가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중세 말기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이단으로 심판 받아 고통을 당했습니까

예수님 또한 이 문화의 피해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무죄하셨습니다. 그분의 무죄함은 예수님을 심판했던 율법학자들과 대사제들이 꾸며낸 증언에서도 확인됩니다(마태 26,60).

 

남의 희생을 통해 자기 구원을 성취하려는 이 올바르지 못한 문화의 고리를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이 답은 우리 모두가 가진 약점에서 드러납니다. 사람이 가진 최고의 약점, 그것은 바로 불완전함입니다

우리의 수명은 정해져 있고, 우리의 인식 또한 많은 부분 가려져 있습니다

우리의 지식도, 우리의 노력도, 우리의 의향과 의지 모두 하느님이 계획하신 운명 앞에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모든 것이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절망에 부딪쳤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첫 걸음은 

부족한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 내가 하느님 앞에서는 불완전하다는 겸손한 고백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만나는 예수님의 모습도 그랬습니다

사십일 간 단식으로 지쳐 계실 때, 예수님 앞에 유혹자가 등장했습니다

유혹자는 예수님을 집요하게 공격하는데, 처음에는 굶주림을 통해 무절제한 식욕을

그 다음에는 하느님의 권능을 남용시키고자 자만심을

마지막으로는 온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하는 탐욕을 일으키려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의하여 복음을 읽어야 합니다. 자칫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지나가려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데... 당연히 이 정도 유혹은 극복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러나 기억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인간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온전한 인간이셨다는 말은 다시 말해 

우리에게 일으켜지는 모든 감정을 당신도 똑같이 가지고 계셨고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고통도 당신 또한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사십일 간 아무 것도 먹지 못했는데, 그런 사람 앞에 맛있는 빵 한 덩이가 떡하니 나타났다고 생각해봅시다

갓 구운 빵의 향긋한 내음과 먹음직스러운 자태에 달려들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그렇듯, 예수님 또한 똑같은 처지에 계셨을 겁니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누가 나타나 모든 권력과 부귀영화를 아무런 조건 없이 준다고 한다면 

그는 어떤 고민도 할 필요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 자신이 불완전함을 온전히 깨닫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불완전한 인간의 본성을 마음 속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당신 자신 안으로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유혹자에게 대항하는 예수님의 무기는 겸손함인 동시에

완전하신 하느님의 권능과 말씀에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 4,4. 7. 10)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의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어마어마한 유혹을 이겨낸 것도 예수님이셨기에 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예수님은 인간적으로도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분이셨으니까.” 

그러나 다시 생각해봅시다

모든 것이 완벽한 존재에게 유혹자가 들어올 틈이 있을까요? 

흔히 악마는 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을 집요하게 공격하여 그를 죄 짓게 만든다고 합니다

이를 다시 말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처럼 약점이 있었기에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왔고

그분의 약점은 오랜 시간 동안의 단식으로 피폐해진 육신과 굶주림

세상의 왕이 되고자 했던 지배욕

하느님의 능력을 오직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도 우리가 항상 그런 것처럼 유혹의 상황에서 갈등했던 때가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광야 체험은 

앞으로 당신의 공생활에서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시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셨을 겁니다

굶주림이 이렇게나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구나

그리고 사람은 언제나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고

능력이 있으면 자신을 위해 사용하려 하는구나.’ 

그리고 인간의 약함을 몸소 뼛속까지 체험하신 예수님께 

비로소 연민이라는 감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시간 낭비로만 느껴지는 이 처절한 예수님의 체험은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도록 하기 위한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통과 의례인 동시에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약한 인간들과의 연대입니다

예수님의 이 처절한 연대의 종착지는 십자가상 위에서의 죽음이었습니다

인간의 생로병사의 고통을 모두 직접 체험하신 예수님은 그렇기에 

우리가 경배해야 할 성자 하느님이신 동시에 

우리가 닮아가야 할 최고 경지에 이른 참 인간이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유혹자의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으셨던 또 하나의 까닭은 뚜렷한 목적의식이었습니다

단지 겸손함과 연민만으로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는 이 땅에 오신 명백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원하는 것, 그래서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상태로 하느님을 경배하도록 만드는 것’, 

한 마디로 그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목적의식이 유혹을 뿌리치는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가족이 생활할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가장은 자기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업에 종사합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의 생활과 교육을 위해 당신을 날마다 희생하며 삽니다

자식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안락함과 행복을 잠시 뒤로한 채, 날이 새도록 자기 계발에 전념합니다

목적이 뚜렷하고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사람은 자기의 욕구와 바람을 잠시 동안 포기할 수 있습니다.

 

사순 시기를 맞이하여 

우리 또한 잠시 하느님께 봉헌하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포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우선 우리가 지닌 약점과 관련된 것이어야 합니다

또 이는 일상에서 쉽게 닥칠 수 있는 흔한 우리의 흠결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포기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작하기도 전에 쉽게 지쳐버릴 겁니다!).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포기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주엽동 신자 여러분

특히 저와 함께 예수님을 만나러 매 주일 6시에 성전으로 오시는 청년 여러분

예수님께서도 그러셨듯, 우리 또한 매일 모든 순간에 크고 작은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기에 이번 2020년 가해 사순 시기를 시작하며 

우리 모두 각자가 지닌 약점들을 먼저 숙고하고 성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이 약점은 나 자신이 예수님께 좀처럼 다가가지 못하도록 만드는(그래서 죄를 짓게 만드는)’ 약점입니다

여러분이 지닌 약점은 무엇입니까

이 약점을 곰곰이 되새겨보고 솔직한 마음을 담아 하느님께 자기 자신의 약함을 고백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분들이 사순 시기를 

단순히 다른 때보다 좀 더 금욕적으로 살아가는 시기로만 인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나아가야 합니다

단순히 재(: abstinence(), 심신의 건전관리를 위한 절식, 절주, 금주)를 지키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하느님께 대한 더 큰 사랑으로서 표현되어야 우리의 절제가 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완전한 절제는 빈틈없이 완벽하게 해내는 절제이거나 

다른 이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선민 의식에 의한 절제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완전한 절제는 자기 자신이 행복한 절제이면서 동시에 남 또한 행복하게 만드는 절제입니다

이것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사순 제3주일과 제4주일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사순 시기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말씀드리기로 하지요. 한 주 동안 무탈하시고 건강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너는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밤의 공포도 낮에 날아드는 화살도 

어둠 속에 돌아다니는 흑사병도 한낮에 창궐하는 괴질도

네 곁에서 천 명이, 네 오른쪽에서 만 명이 쓰러져도 너에게는 닥쳐오지 않으리라.”(시편 91,5-7)

 

 

<사순 제1주간 동안 실천하기>

내가 하느님께 다가가지 못하도록, 그래서 죄 짓게 만드는 나의 약점은 무엇인지 성찰하기

댓글목록

김동진 스테파노님의 댓글

김동진 스테파노 작성일

아멘~~
저의 약점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사순이 단순한 금욕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더 큰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우리의 절제가 완전해질 수 있다는 말씀을 묵상하겠습니다.

정계순 엘리사벳님의 댓글

정계순 엘리사벳 작성일

아멘, 아멘~~~()

이정붕 마르코님의 댓글

이정붕 마르코 작성일

묵상할 수 있도록 특강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홈페이지에서 못 보시는 분들을 위해서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