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 수요일(성녀 마리아막달레나 축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요한 20,11)
이른 새벽 무덤을 향해 잰 걸음을 옮기던 여인의 눈동자는 아직 더 흘릴 눈물이 남아있는 듯 촉촉하고 그녀의 눈가에는 마른 눈물자국이 강을 이루었으리라! 사랑은 곧 눈물이라는 것, 유행가 가사를 들이대지 않아도 우리 모두 안다. 인간이란 사랑 없인 본성적으로 살 수 없는 존재다. 즉 눈물 없는 사람은 사람도 아니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마리아 막달레나! 예수님께서 마귀를 일곱이나 추방해 새로운 인간으로 세운 여인,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서 안타깝고 서러운 눈물을 흘리며 사랑하는 이의 처참한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던 비운의 여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처음 만났고 그 소식을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었던 위대한 여성 사도가 바로 그녀다. 믿음의 여인이었고, 열정의 여인이었고, 사랑의 여인이었다.
오늘 독서인 아가서는 막달레나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아가 3,1)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다.”(요한 20,11)
어떻게 울었을까? 얼마동안이나 울었을까? 관상해보라!
우리 각자의 성정과 마음, 예수님을 사랑하는 정도에 따라 달리 보이리라!
그녀의 열정과 사랑을 감안했을 때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시신조차 사라진 무덤 앞에서 그야말로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눈물과 콧물 범벅이요 머리는 아무렇게나 산발한 채 마치 미친 여자처럼 그렇게 서럽게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어떤 이에게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애써 삼키며 흐느끼는 모습이나, 폭포처럼 쏟아지는 그녀의 눈물의 강을 볼 수도 있겠다.
그녀의 그 사랑이, 그 눈물이 “마리아야”하고 이름 부르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었다. 동의하는가? 예수님께서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마리아는 그분의 꽃이 되었다.
예수님의 꽃이 되길 바라는가? 그렇다면 사랑이 우선이다. 눈물은 사랑 뒤에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필연일 뿐. 밤새도록 그분을 찾아나서는 애타는 그리움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당신 때문에 슬퍼하고 낙담하는 이들에게만 나타나셨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의 죄의식을 없애려고 그리고 눈물 흘리는 이들의 눈물을 거두게 하시려고 나타나셨다.
예수님은 로마병사들이나 이스라엘의 지배계층(대제관, 사두가이, 율법학자, 바리사이로 지칭되는 이들)에게는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그리움 앞에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다.
나의 사랑, 나의 눈물, 나의 그리움의 우물을 살피는 오늘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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