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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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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9-04 23:28

연중 22주 토요일

2,197
김오석 라이문도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루가 6,5)

 

배고픔에 대해서 아는가? 1950년대와 60년대에 젊은 시기를 보내신 대부분의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그 기억이 뼛속 깊이 아로새겨져 있을 것이다. ‘보릿고개를 넘기는 것은 고통스러운 배고픔을 동반하는 고행의 길이었다. 보릿고개란 지난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이미 바닥나고, 올해 농사지은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 식량 사정이 매우 어려운 시기를 의미한다.

 

어린 시절, 끼니를 거르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꽁보리밥에 간장 한 종지나 말간 수제비라도 먹을 수 있는 날은 참으로 행복한 날이었다. 거의 매끼 고구마로 때워야 했다.

 

오늘 봉성체를 했는데 맨 마지막 집에서 간식으로 고구마와 떡 등의 다과를 내왔다. 평소에는 고구마를 쳐다보지도 않지만 오늘은 조금 맛보았다. 대놓고 내색을 하진 못하지만 특식으로 수제비나 꽁보리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내심 얄밉다. 나는 꽁보리밥, 수제비, 고구마는 좋아하지 않는다. 안 먹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평생 먹을 거 어린 시절에 다 먹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는다.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리사이들 눈에는 이것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추수하고 타작하는 일에 해당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글자로 표현된 규정과 법을 그 제정 취지를 잊고 적용하면 무정하고 비인간적인 족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배고팠던 다윗 일행이 하느님께 축성되어 제단에 놓인 빵을 먹었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법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신다. 글자에 얽매인 규정 준수인가? 아니면 사람의 생명이 우선인가? 묻고 계신다.

신앙은 하느님을 중심축으로 정하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신앙은 사람 안에 거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선언은 사람 안의 하느님을 만나는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아들이 묵시문학적 해석으로 볼 때 예수님을 지칭하는 것이긴 하지만 사실 누구나 사람의 아들이지 않는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동일성이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하느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 사람들의 결핍과 필요를 걱정하고 그것을 채우는데 온 생애를 바칠 수밖에 없다.

 

배고픔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밥은 구원이고 생명이다. 법과 규정이 인간의 눈물과 고통을 편들지 않는다면 쓸모없다. 예수님의 탈법적 선언과 행동은 오늘에도 믿는 이들의 삶 속에서 계속되어야 할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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