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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9-07 01:57

연중 23주 월요일

2,005
김오석 라이문도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하고 이르셨다.”(루가 6,8)

 

사람들 한 가운데 선다는 것은 많은 시선을 견뎌낸다는 것이다. 빛 가운데 자신의 존재 전체를 드러내는 듯한 부담을 느끼는 일이기도 하다. 더구나 자신이 떳떳하지 않다는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죽기보다 싫은 일인지도 모른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곰패팔이다. 육체적으로 온전하지 못하다. 물건 하나 제대로 손에 쥘 수 없는 처지다. 사람들 앞에 늘 주눅 들어 살아야 하는 고개 숙인 인생이다.

그를 향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살아가면서 늘 당당하고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외모나 육체적 열등의식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적인 어려움과 더불어 아무도 모르는 정신적, 영적 결핍과 장애로 많은 이들이 고개 숙이고 자신감을 잃고 살아간다. 군중 속에 파묻혀 익명의 존재로 머물기를 선호하며 누군가의 눈길을 애써 피하려 발버둥 친다. 예수님은 그렇게 숨죽이며 고개 떨구고 살아가는 모두를 향해 당신의 따스한 음성으로 말씀하신다. “괜찮다! 괜찮다!” 용기를 가지고 사람들 한 가운데 우뚝 서라고 불러내신다. 완벽한 사람은 별로 없다고, 완전함은 과정이지 완성품이 아니라고 토닥여 주신다. 오늘 우리가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문제는 자신의 오그라든 손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뻔뻔한 사람들이다.

오그라든 손은 펼 수 없는 손을 상징한다. 한 번 움켜쥔 것은 결코 놓지 않는 탐욕과 축적을 의미한다. 펼 수 없는 손이란 오직 자신만을 향한 내적 욕망의 방향을 지시한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 길임을 깨닫지 못한 욕망은 결코 손을 펼 수 없게 한다. 모태로부터 태어난 갓난아기는 두 손을 꼭 쥐고 태어나지만, 죽음에 이른 사람은 두 손을 펴고 떠난다고 한다. 인생이란 두 손에 뭔가를 쥐기 위해 사는 여정이 아니라 두 손을 쭉 펴기 위해 살아가는 순례자의 길이라는 가르침이다.

 

오늘 예수님은 사람들 한 가운데 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명령한다. “손을 펴라”(루가 6,10: 공동번역)

인생이란, 손을 펴고 하느님께로 돌아가기 위한 길고도 짧은 순례의 여정임을 기억하는 오늘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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