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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9-14 00:20

연중 24주 월(성 십자가 현양 축일)

2,014
김오석 라이문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요한 3,14)

 

오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경배하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이다.

우리들의 신앙의 삶 곳곳에 빈틈없이 함께 하고 있는 예수님 현존의 상징으로 우리는 십자가를 간직한다. 집안의 벽에도, 책상 위에도, 자동차 안에도, 늘 지니고 다니는 묵주에도 어김없이 십자가는 함께 한다.

 

십자가는 도대체 무엇인가? 원초적인 설명은 예수님께서 처형당하신 형틀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의 지배 하에서 정치범이나 흉악범의 사형을 집행하는 도구였다. 그 고통이 너무 크고 수치스러운 것이어서 로마 시민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십자가, 정확히 말해 예수님께서 매달려 죽으신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한숨을 토해내고, 눈물짓고, 소원을 빌고 기도하며 살아간다.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려 이스라엘 백성의 목숨을 구했던 구리 뱀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는 오늘도 높이 들려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탄원하는 우리 믿는 이들을 생명에로 이끌어 주신다.

그러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지닌 십자가 그 자체가 마술적인 영험한 힘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주술적으로 십자가를 바라보고 만지는 것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지시하는 것은 그분의 삶 자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장 낮은 자에게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함께 하시는 그분의 겸손과 사랑이 십자가에 담겨 있다. 불의와 부정, 억압과 착취에 대한 그분의 거룩한 분노가 십자가에 서려있음을 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십자가의 삶에로 초대한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이 십자가를 지는 여정임을 잊지 말고 스승이신 예수님의 삶을 따라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어떻게 짊어질 것인가?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두 제자에게 각각의 십자가를 메주시면서, 당신은 길의 끝에 가서 기다리겠노라 하셨다.

첫 번째 제자는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떠났다. 두 번째 제자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실룩거리며 뒤처져 길을 떠났다. 하루 만에 첫 번째 제자는 길 끝에 당도하여 예수님께 십자가를 넘겨드렸다.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의 등을 토닥이며 말씀하셨다. “, 잘했다.”

두 번째 제자는 이튿날 저녁이 되어서야 길 끝에 도착했다. 그는 십자가를 예수님의 발밑에 내동댕이치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저에게는 왜 이리 무거운 십자가를 주셨나요?” 예수님께서는 슬픈 얼굴로 그 제자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십자가는 둘 다 똑같은 무게였느니라. 네 십자가가 무거웠던 까닭은 십자가를 지고 오는 동안 줄곧 불평을 늘어놓은 때문이다. 네가 불평할 때마다 십자가의 무게가 점점 늘어났던 거란다.”

 

짊어진 삶의 십자가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먼저 나의 태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늘 하루도 콧노래를 부르며 지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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