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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9-18 23:03

연중 24주 토요일

2,561
김오석 라이문도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 버리기도 하였다. 어떤 것은 바위에 떨어져, 싹이 자라기는 하였지만 물기가 없어 말라 버렸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한가운데로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루가 8,5-8)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루가 8,11) 하느님의 말씀인 씨가 뿌려지는 땅은 우리의 마음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의심할 바 없는 진리이고 뿌려지는 방법은 한결 같다. 문제는 씨를 받아들이는 땅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길바닥, 바위, 가시덤불, 좋은 땅이 복음이 제시하는 예다.

 

길바닥은, 말씀을 받아들이기는 하나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킨다. 진리를 따를 마음이 없는 도덕적으로 부패한 사람이거나, 자신만이 옳다고 자처하는 자아도취적 혹은 독선적이어서 십자가의 진리를 깨달을 겸손이 없는 사람들이다. 과학적, 합리적 지식과 사고에 익숙하기에 하느님의 신비에 쉽게 고개를 돌려버리는 사람들의 마음도 여기에 속한다.

 

바위는, 믿기는 하나 믿음에 항구하지 못하고 자기주체성이 부족한, 귀가 얇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킨다. 혼란스러운 정신으로 쉽게 경솔한 행동을 하며, 작은 어려움에도 혼비백산하는 경박한 영혼을 지니고 있어서 세속적 쾌락의 탐닉에 쉽게 집착하는 사람들이다.

 

가시덤불은 믿음을 삶의 액세서리로 취급하는 거짓 믿음을 지닌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킨다. 이들의 마음은 믿음 아닌 다른 것에 대한 관심이 너무 커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앙 아닌 다른 것들(권력, , 명예)만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커져 영혼을 장악하고 말씀의 씨앗을 질식시키고 만다. 말씀을 많이 들어 알고는 있으나 행위는 이교도의 관습과 문화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다. 삶에서 겪는 다양한 불안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하느님의 은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권세와 부와 영화에 취하여 믿음 없이도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 안에서 말씀이 열매를 맺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실 신앙은 유혹의 힘이 강할 때, 그리고 순교의 때에 그 진실성이 드러나는 법이다. 부귀영화가 눈앞에 있거나, 혹은 가시덤불이 심장을 찔러댈 때 진정한 믿음이 드러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좋은 땅은 예민하고 민감한 감수성으로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신의 삶과 경험 속에서 묵상하고 성장케 하여, 그 말씀을 구체적 행위로 세상에 드러내는 사람의 마음이라 하겠다. 말씀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말씀을 뿌리기도 하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

 

내 마음의 밭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다.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이 아니라, 튼실한 씨앗과 만나 수십 배의 열매를 맺는 그런 좋은 땅이었으면 좋겠다. 결국 언젠가 이르게 될 어스름 인생의 황혼에 쭉정이만 잔뜩 쌓인 그런 밭이 아니라 굵은 낟알이 풍성하게 여문 그런 내 마음의 밭을 바라보며 감사하며 웃을 수 있도록 오늘 하루를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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