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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9-28 23:58

연중 26주 월요일

1,983
김오석 라이문도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루가 9,46)

 

스승인 예수님은 다가올 수난과 죽음을 내다보며 비장한 결의를 다지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자리다툼이다. 이해가 되는가? 자기 생각에 빠져 있으면 다른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는 법이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가난하기에 불편한 것은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가난하다고 무시당하는 것은 견딜 수 없다. 인간의 자존감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들에게 있어 명예란 때로 목숨을 걸만한 가치를 지닌다. 억울하게 더렵혀진 명예를 되찾기 위해 죽음으로 결백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사관생도들은 명예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다. 신학생들은 시험볼 때 감독관이 없다. 컨닝을 하는 것은 지식을 훔치는 일이고, 자신을 속이는 불명예이기에 신학생들의 양심에 맡긴다. 컨닝을 하여 좋은 성적을 얻을 생각이라면 일찌감치 자퇴하여 다른 길을 찾는 게 좋다는 표지가 바로 무감독 시험이다.

 

명예와 명예욕은 다르다. 명예는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온 삶의 결과로 피어나는 꽃이다. 명예욕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억지로 꽃을 피우려하는 것과 같다. 자신을 추하게 만들뿐이다. 스승 예수님은 죽음을 내다보고 고뇌하는데 제자들은 뜬금없는 자리다툼이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왕이 되실 때 그 첫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이냐에 대한 논쟁이 일어난 것이다.

 

예수님의 답은 명쾌하다. ‘내가 이룰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다. 바로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지닌 자, 어린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가 가장 큰 사람이다.’

약하디 약해서 누군가의 보살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어린이와 같은 힘없는 자, 가난한 자, 작은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돌보는 사람이 첫째 자리에 합당하다. 스승과 세상과 공동체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삶이 제자의 명예요 그리스도인의 명예가 된다.

 

거꾸로 거꾸로 가는 길이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섬기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나라에는 첫 자리에 어울린다. 낮아지는 것이 높아지는 것이라는 역설을 이해하고 살고 사랑해야 한다. 세상과는 다르게, 세상 속에 살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세상과는 다르게 길을 걸어야 한다.

 

지금 나의 삶이 세상의 가치와 흐름에 완전 조화롭다면 오히려 길을 잘못 들었음을 걱정 할 때다.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타협은 당연한 선택이 아니다. 비타협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야 할 참된 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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