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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0-08 22:41

연중 27주 금요일

1,990
김오석 라이문도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루가 11,23)

 

예수님의 깃발 아래 분명히 서지 않는 이는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다. 우물쭈물 망설이는 자, 교묘하게 외줄타기를 하며 어슴푸레한 회색지대를 찾아 숨을 곳을 찾는 자, 적극적으로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모두 반대하는 자다.

 

하느님의 질서와 세상의 질서, 성령과 악령, 천국과 지옥, 영원한 축복과 영원한 저주 사이에 제 삼자적인 중립 지대, 또는 싸우지 않아도 되는 땅, 그저 방관만 하고 앉아 있어도 되는 그런 땅은 없다. 혹시 연옥을 회색지대 또는 중립지대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연옥의 개념은 실상 인간 구원 문제에 대한 교회의 고민의 결과이고 신학적 결론일 뿐이다. 자비롭고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인간의 작은 결점이나 오점조차 용인하지 않는 무자비한 분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느님 나라인가? 아니면 악령의 나라인가? 오늘 내가 해야 하는 선택 앞에서 양다리 걸치기는 불가능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예수님의 편에 서서 예수님의 깃발을 힘 있게 움켜쥐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질서에 포획되어, 권력과 재물, 부귀와 영화라는 성공 신화를 위해 경쟁하고 투쟁하고 갈라서고 미워하고 때로는 죽이는 이전투구의 아수라장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습관적 예배행위와 타성적 자선과 자기 만족을 위한 선행으로 마치 내가 예수님 편에 서있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세상의 좋은 것에 온통 마음을 뺏긴 채, 혼자만의 즐거움과 안온함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살면서도 내가 예수님 편에 서 있다는 착각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상 그런 사람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일곱 마귀를 불러들여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또 스승으로 고백하여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통치, 하느님의 질서 안에 살고자 하는 사람은 단호해야 한다. 악령의 농간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 온갖 억압과 착취, 불의와 거짓의 세력 앞에서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자연과 온갖 피조물들이 겪는 약탈과 소멸의 조작적 행위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해야 한다. 하느님의 질서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언자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이고, 예수님의 삶을 닮으려 애쓰는 사람들이고, 순교자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하느님의 나라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섬김의 기쁨을 알기에 겸손하게 엎드릴 줄 알고, 하느님 안에서 온전한 자유를 누리는 사랑의 사람들이다.

 

나는 과연 예수님 편에 서서 하느님의 정의에 투신하고, 섬김과 기쁨과 사랑의 삶을 살기 위해 다른 이를 모아들이는 사람인가? 아니면 혹 외줄 타는 사람인가? 그것도 아니면 이미 세상 속에 묻혀 버린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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