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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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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10-15 00:55

연중 28주 목요일(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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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석 라이문도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루가 11,47)

 

조상들은 하느님의 사람인 예언자들을 죽였다. 후손들은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꾸민다. 그리고 조상들의 죄악을 감추려 한다. 오늘 우리의 현실과 기묘하게 오버랩 되는 지적이다.

 

나라를 위하고 국민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정치인들과 오늘날 우리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지닌 경제계, 법조계, 언론계의 유망한 인사들치고 친일의 문제에 있어서 깨끗한 가문이 드물다. 해방 후 일제의 잔재 청산을 말끔히 하지 못한 후유증이다. 또한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과 노태우로 이어지는 독재 정권 시절, 권력 비호 아래 출세하고 축재하고 아직도 그 후광으로 행세하는 기득권자들도 많다. 그들의 후손들은 국가를 위해 일한다면서 자신들의 조상이 역사교과서에 부정과 변절과 술수의 귀재로 등장하는 것은 싫어한다. 그래서 은근히 일제 강점기를 미화하는 식민사관에 동조하고, 차라리 박정희 유신 시대가 좋았다고 뜬금없는 회고를 한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한다고 정부가 발표했다. 참담한 심정이다. 독재국가나 북한이나 쿠바와 방글라데시 등 세계의 몇몇 사회주의국가와 후진국가에서만 채택하는 제도를 우리는 아주 용감하게 채택했다. 동아시아 역사 왜곡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일본의 아베정권도 하지 못하는 일을 우리 박근혜 정권은 학계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사천리로 마무리 지었다. 무엇을 위함인가? 교육부는 역사교과서의 검정제 도입 이후 끊임없는 사실 오류 및 편향성 논란이 제기되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역사란 해석의 문제다. 역사란 과거의 사실과 사건을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해석과 재조명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올바른 방향과 가치관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역사라면 현재를 사는 다양한 삶의 자리를 통해 과거는 재해석되어야 하는 것이 옳다. 지금까지 검정제하에서 여러 역사학자들이 쓴 역사교과서의 다양한 서술이 기득권자들의 역린을 건드리고 있어, 이번 단일 국정교과서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단 하나의 해석을 백성들에게 강요하고자 하는 의도 말고는 달리 생각할 무엇이 없다. 독립유공자들을 겉으로는 칭송하면서도 실제 지원은 쥐꼬리로 축소하고, 자기 조상들의 죄악과 부끄러움은 덮으려고 하는 시도에 불과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이제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는 말하기 어려워졌다. 일본은 검정제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교과서를 버젓하게 채택하고, ‘독도는 일본 땅이라 하고, ‘위안부는 자발적이었다.’고 서술해도 우리의 항의는 씨알이 먹히지 않게 생겼다. “우리 일본은 역사교과서를 민간에서 만들지 정부가 간섭하는 국정제가 아니다. 역사 교과서는 국가가 만들지 않는다.”고 주장하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기득권자들이 불리한 진실을 감추고 왜곡하려는 것은 세월호 참사나 교과서 국정화나 다를 바 없다. 친일의 문제나 독재정권의 밝은 면만 드러내고 어두운 면은 감추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역사가 될 수는 없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죄를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루가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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