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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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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10-27 22:33

연중 30주 수(성 시몬과 성 타대오 사도 축일)

2,049
김오석 라이문도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루가 6,12-13)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산에 올라 밤새 기도하신 예수님 고뇌의 결과입니다. 당신을 따르던 여러 사람들 중에 12명을 뽑기 위해 예수님은 밤을 새우며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새 이스라엘인 교회의 열두 기둥이 될 제자들은 도제 훈련을 받게 될 것이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 성장해 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험난합니다. 성공과 실패, 희망과 좌절, 배신과 회개의 과정을 거치고, 궁극적으로는 부활의 빛에 비추임 받고서야 제자 교육이 마무리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밤새 기도한 열매일 뿐만 아니라 섬세하고 면밀히 검토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스승을 배반한 제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의아하게 합니다. 하기야 으뜸 제자였던 베드로조차 스승이 붙잡혀 조롱받고 고난받으며 죽음의 길을 갈 때 그분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잡아뗏으니 예수님과 제자들의 근원적 관계 저변에 배신의 강물이 흐르고 있었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살면서 배신당한 기억이 없는 사람은 드뭅니다. 다만 정말 마음으로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의 기억은 더 절절하게 가슴 찢어지는 아픔이며, 또 그만큼의 분노로 저장됩니다.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 받은 배신의 상처는 쉽게 가라앉지도 아물지도 않습니다. 이제 가라앉고 아물었다 싶으면 어느새 슬며시 가슴을 툭 툭 치며 잊었던 아픈 상처를 되살려 내곤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배신은 인간관계에 늘 있는 일이라는 뜻이겠지요. 배신당하지 않으려면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준 상태에서 아직 마음을 얻지 못했는데 배신이 일어나면 홀로 그 아픔을 삭여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 주는 것을 주저하는 것이겠지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일은 없어야 하지만, 한 번 두 번 쌓이는 배신의 세월이 마음을 닫게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고심 끝에 뽑은 제자들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마음을 열고 마음을 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배신의 칼을 내미는 상대방이 문제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도 유다도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보셨습니다. 배신당한 아픔에 분노하지 않고, 배신할 수밖에 없었던 제자들의 그 불신과 비굴함에 연민의 시선을 보낼 뿐입니다. 베드로는 한없이 울었고 뉘우쳤고 다시 돌아왔지만, 유다는 목을 매 죽었습니다. 못나고 부족한 자신을 그렇구나!’하고 인정하는 것은 용기이며 지혜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용납할 수 없는 체면과 자존심이 종종 죽음이라는 극단에로 사람을 이끌기 때문입니다.

 

어렵긴 하지만 배신의 상처와 분노로 자기 연민과 자기 학대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도 당신을 팔아넘긴 유다를 제자로 뽑아 마음을 주었고,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으뜸 제자로 삼으셨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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