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0-31 02:04

연중 30주 토요일

2,017
김오석 라이문도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가 14,11)

 

겸손은 땅과 매우 가까운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땅은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쓰레기든 독극물이든 가뭄에 내리는 단비든 겨울날의 하얀 눈송이든 거절하는 법을 모릅니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 깨끗하게 정화하여 결국 생명이 거하고 싹트고 자라나 꽃 피우게 하고 열매 맺게 합니다. 그래서 땅을 일컬어 어머니인 대지라고 말합니다.

 

사제로 서품할 때, 그리고 수도자의 종신서원 때 수품자들과 서원자들은 땅바닥에 엎드려 성인호칭기도를 바칩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성인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대지와 같은 겸손함으로 하느님의 영광만을 바라보며 살 것을 다짐하고 기도하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의 저 자신을 생각하면 초심을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낮은 자리에서 섬기지 못하고 섬김을 받는데 익숙해져버린 부끄러움만이 도드라집니다.

 

겸손함은 받아들임입니다. 타인의 악덕과 무례함까지도 연민으로 바라보고 기다리는 인내입니다.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물의 속성과 닮음입니다. 겸손은 비굴이나 처세가 아닙니다. 부자나 권력자가 아랫사람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한 기술도 아니며, 가난한 이나 약자가 있는 이들에게 잘 보이려는 비굴한 처세술도 아닙니다.

 

겸손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요 태도입니다. 겸손은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아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의 비천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겸손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낮은 곳으로 내려가 그들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삼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기꺼이 가난한 이들에게 나의 것을 나누는 자선은 겸손의 결과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더 이상 참혹하게 만들지 말고 궁핍한 사람에게 자선 베풀기를 미루지 말아라.”(집회 4,3:공동번역)는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진정한 자선은 가난한 이들과 한마음이 될 때 가능하고 참된 의미를 지닙니다. 자신만 잘되려고 하는 사람은 결코 비천한 사람들과 한마음을 이루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지 항상 말없이 봉사하고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기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본당 공동체에도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얼른 눈에 띄지는 않지만 공동체를 위한 그들의 헌신이 공동체를 맑고 밝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무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신뢰를 보내고 사귀고 싶어 합니다. 참된 명예는 직책이나 튀는 행동이 주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낮은 자리에서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봉사와 섬김에서 옵니다.

 

오늘은 적당한 곳에서 바닥에 바짝 엎드려 사제 서품 때의 감동과 기도를 다시 되새겨 봐야 하겠습니다. 깨알만큼이라도 더 낮아지고 섬기려는 노력을 새로이 해야 하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