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1-02 00:11

연중 31주 월(위령의 날)

2,071
김오석 라이문도

11월은 위령의 달입니다. 11월의 첫날인 어제는 모든 성인의 대축일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이미 천국을 살았던 모든 성인들이 지금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영생을 누리고 있음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날이었습니다.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세상을 떠나 하느님의 자비에 맡겨진 모든 분들을 기억하는 날이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살아생전 그들의 삶과 발자취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또한 언젠가는 우리 자신도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날이기도 합니다.

 

사는 방법은 일생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이상으로 불가사의하게 여겨지겠지만 평생을 통해서 배워야할 것은 죽는 일입니다.

죽음을 삶의 몰락이 아니라 삶의 목적, 삶의 완성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우리 신앙의 본질 즉, 부활하게 될 인간의 본질에 합당한 자세를 간직하는 것이 됩니다.

 

죽음을 통해 인간의 삶은 완성된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우리는 하느님을 뵙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희망하며 살아온 순결하고 아름다운 영혼이 하느님을 만나는 자유롭고 위대한 순간이 바로 죽음이고, 십자가 예수님의 오른쪽 죄수처럼 다소 미흡한 영혼조차도 자비로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자유로운 최종 결단이 죽음의 순간에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 최종 결단과 구체적인 실천이 너무 늦지 않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루가 13,25)

 

우리가 죽음을 말하는 이유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인지를 깨닫고 살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이 세상에서 우리 삶을 매듭짓는 죽음을 마주하고 묵상하면서 성찰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죽음이 주는 현실적인 단절과 상실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우리의 삶에서 죽음을 몰아내고 있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능하면 죽음의 현실을 외면하고 현실에 급급한 인생을 살다가 어느 날 마주치게 되는 죽음 앞에 분노하고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을 토해내기도 하는 것이지요.

 

비극은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너무 늦게서야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삶은 하나의 기회이며, 아름다움이요, 놀이라는 것, 그것을 붙잡고 감상하고 누리는 것이 매순간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삶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시선을 간직하고 있습니까?

숨 쉬고 살아있다는 것, 가족들과 함께 부대끼며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는 것, 이웃과 정겨운 담소를 나눌 수 있다는 것, 붉게 물들어 가는 호수 공원의 단풍을 올해도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들처럼, 매일의 삶을 하느님께서 내 앞에 펼쳐 보이는 기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감사와 찬미, 기쁨과 충만함이 절로 넘쳐 흐를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더 나은 삶에 대해 고민을 더해봅니다. 나의 삶이 지금까지 그럭저럭 무난했지만 단 한번이라도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는 설레임과 열정 속에 혼신의 힘을 다해 사랑하며 살아본 적이 있는가 질문해 봅니다. 또 그렇게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와 사랑을 드리며 산 적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지금부터라도, 이 순간부터라도 그리 살게 해달라고, 가슴 뛰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사랑하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숨 쉬고 있어 살아있는 듯하나 이미 죽은 사람도 있고, 죽은 듯하지만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미리 이 세상에서 충만하게 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위령의 날을 맞아 우리와 함께 했던 기쁨과 슬픔의 시간들, 따스한 배려와 체취, 추억과 사랑을 갖고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하느님께 모아들이는 삶의 완성임을 함께 축하하고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