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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1-10 03:57

연중 32주 화(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2,018
김오석 라이문도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가17,10)

 

저는 다정다감한 성향이 아닙니다. 무뚝뚝하고 차갑고 냉정한 쪽에 가깝습니다. 윗사람을 모실 때도 곰살스럽게 말하거나 행동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 이전에 저 스스로 그렇게 느낍니다. 또 마음 속 생각을 잘 감추지 못하고 티를 잘 냅니다. 소위 포커페이스는 아니죠. 제 나름의 기준에 따라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표현하는 편입니다. 저 보고 칭찬에 인색하다고들 말합니다. 어쩌면 제 기준이 좀 높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제가 다른 사람의 칭찬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교우 분 중 누군가가 신부님, 오늘 말씀 참 좋았어요!”라고 귀띔해주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나이가 좀 들었나 봅니다. 요즘은 어지간하면 칭찬의 말이나, 감사의 인사, 격려의 말도 많이 하려고 노력하지만 천성이 그런지라 썩 잘되지는 않습니다.

 

간혹 교우 분들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 대요! 신부님, 교우들 많이 칭찬해주시고 격려해 주세요!”라고 청합니다. 당연히 그리하려고 애쓰겠지만 오늘 복음 말씀이 저의 변명을 대신해주는 듯해서 마음이 좀 놓입니다.

 

가방과 보자기이야기를 해드릴까 합니다.

가방은 일정 용량 이상 담을 수 없으며, 또 적정량 이하를 담게 되면 빈 공간 때문에 쭈그러지거나 운반에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또 쓰지 않을 때도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는 고집을 부려 때로 걸리적거리는 천덕꾸러기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에 비해 보자기는 물량의 많고 적음에 별로 구애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적절하게 변형시키는 변신의 귀재입니다. 그러면서도 쓰고 난 뒤 접어버리면 공간을 거의 차지하지 않는 모습은 얼마나 겸손한지 모릅니다.

거기에 더해, 보자기는 그것을 꼬아서 머리 위에 올리면 똬리가 되고 이마에 두르면 수건이 되고, 목에 두르면 목도리가 됩니다. 허리에 두르면 허리띠 대신 사용할 수 있고 앞치마도 됩니다. 등에 둘러 아기를 업는 포대기 대용으로 쓸 수도 있으며 잘 접어 손에 들고 다니면 손수건, 떠나가는 님을 향해 흔들면 정()이 되어 마음을 드러내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쓸모가 많으면서도 쓰이고 나면 접혀서 한쪽 구석에 거의 보이지 않게 조용히 머무는 보자기는 사람으로 말하자면 성인군자에 가깝습니다.

 

임무가 끝나면 거의 보이지도 않게 개켜져 구석진 곳에 다소곳이 숨어버리는 보자기처럼,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다목적, 다용도에 사용되고서도 결코 자랑하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종의 모습을 우리 역시 간직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입니다. 수고한 사람의 땀방울은 사람이 미처 알아채지 못해도 하느님은 다 아십니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들어야 인정받았다고 여길 필요 없습니다. 사도직의 봉사는 하느님과의 내밀한 방에서 가슴과 가슴이 통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홀로 그러나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지면을 빌어 본당 사도직과 기타 여러 봉사직에서 애쓰며 땀 흘리는 모든 교우 여러분께 마음을 모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충만하게 되갚아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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