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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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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11-11 23:47

연중 32주 목(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1,952
김오석 라이문도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가 17,21)

 

하느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에 있다.’는 예수님의 오늘 말씀은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는 예수님의 선포와 맞아 떨어집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죽어야 가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가까이 와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죽어야 가는 나라라는 생각을 죽일 때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사실을 믿는 이들에게 실재하는 나라이며, 그 나라는 너와 나 사이의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 곧 천국이 와 있다는 가르침은 하느님이 우리 삶 한가운데 와 계신다는 가르침입니다. 천국은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안에 하느님 나라의 행복이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며 그 나라를 만들어 내야 할 소명이 있습니다. 또 그 나라를 차지할 권리가 있음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 얼마나 기쁘고 가슴 설레는 소식입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이 땅 속 깊은 곳에 감춰져 있다.’(마태 13,44)고 말씀하십니다. 냄새나는 온갖 거름이 뿌려진 더러운 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상징합니다.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밭을 확보해야 하고 똥오줌이 범벅된 밭을 파헤쳐야 합니다. 똥이 더럽다고 밭에 들어가지 않거나 손에 묻을까봐 밭을 파헤치지 않는 사람은 결코 그 안에 감추어진 보화를 캐낼 수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원하는 사람은 세상을 떠나려는 마음을 버리고 이 땅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바로 구원의 장소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하느님 나라에 버금가는 행복은 어떤 것일까요? 마음의 평화, 건강한 육신, 풍요로운 삶, 신명나는 기쁨, 우정과 사랑, 정의와 평화, 마음이 통하는 친교 등이 구현된 세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그런 세계를 천국이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분명 그런 삶의 요소와 모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는 일정 부분 우리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위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한 가운데 존재의 의미가 충만하도록, 충만한 기쁨과 평화가 깃들어 있는 하느님 나라를 이루려면, 매 순간 살아있으면서 인간관계 안에서 죽음을 사는 사람들이 넘쳐날 때 가능합니다. 욕망과 쓸데없는 자존심,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교만으로 발버둥치는 거짓 자아가 죽을 때마다 하느님 나라는 내 안에서 시작됩니다. 너와 나 사이에서 자라고 꽃핍니다.

 

하느님 나라는 누군가가 먼저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것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그렇게 살아갈 때 하느님 나라는 바로 이 땅 위에 발생하는 실재가 됩니다. 하느님나라는 바로 이런 식으로 죽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완성된 실재로서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으로부터 마지막에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를 말할 때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고 하며, “지금, 여기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오늘 나는 과연 하느님 나라를 이루는 일에 전념할 것인지, 아니면 그 나라를 무너뜨리는 훼방꾼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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