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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1-13 02:06

연중 32주 금요일

1,976
김오석 라이문도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루가 17, 34-35)

 

지금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일터에서 일하고 있는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지, 공원에서 산책하고 있는지, 침상에 누워 잠자고 있는지가 결정적이지 않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장소 때문이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이유, 지향이 결정적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는 어제 복음의 가르침은 너와 나의 관계성에 의해 발생하는 하느님나라의 신비를 드러낼 뿐 아니라, 오늘 내가 존재하는 바로 그곳에서 과연 하느님나라를 살고 있느냐의 질문으로 연결됩니다.

좀 더 확장해본다면 권좌에 앉아 있음이, 대궐 같은 큰 집에 살고 있음이, 수많은 사람의 열광적 환호 가운데 있음이, 내가 천국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느님나라를 사는 사람의 지향은 이렇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이 마치 나의 아픔과 슬픔인양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흘리는 땀방울과 눈물이 바로 그들의 땀방울과 눈물을 대신하게 되길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존재의 스러짐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진 소중한 것 모든 것들을 필요한 이에게 내어주는데 인색하지 않고 늘 준비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공간과 시간을 내가 존재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더 밝게, 더 행복하게 변화시키려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런 지향으로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곳에서 행해야 할 나의 일상을 마치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정성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여기가 천국의 시간이요 장소임을 알고 천국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지붕 위가 천국이요, 잠자려 누워있는 침상이 천국이며, 땀 흘리며 맷돌질하는 순간이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지붕 위에 있다가 마지막이라고 세간살이를 챙기겠다고 집 안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침상에서 깜짝 놀라 뛰어내릴 이유가 없습니다. 맷돌질을 멈추고 도망칠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 운명의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에게 내일은 기약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그리고 여기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구원이란 자신에게 고유한 반복되는 일상의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발견하고 최선을 다해 그 가치를 추구해 나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11월 위령성월도 벌써 중순에 접어듭니다. 죽음을 묵상하는 달입니다. 질병 중에, 때로는 별 것 아닌 고뿔에 걸려 사나흘 앓으면서도 알게 되는 깨달음은 인간이란 육적, 영적으로 참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죽음의 산허리를 돌아온 사람들 대부분이 말하기를, 죽음과 마주한 순간에 돌아보는 과거의 시간들 속에서 아쉽고 후회되는 일이란 더 가지고, 더 누리고, 더 많이 먹지 못한 것이 아니라, 더 나누고 더 용서하고 더 사랑하지 않은 것이라고들 합니다.

 

오늘 우리가 있는 어떤 자리에서든 천국을 사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만나는 모든 이에게 그냥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존재하는 공간과 시간이 조금이라도 천국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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