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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1-25 23:44

연중 34주 목요일

1,919
김오석 라이문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가 21,28)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루가 21,20)

오늘의 루가복음은 분명하게 서기 70년에 일어난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점령과 성전이 불태워진 역사적 배경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즈음의 이스라엘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이렇다. 높은 세금과 심한 가뭄, 기근이 겹친 서기 45년경 튜다의 반란이 일어났다.(사도 5,36) 마지막 유다 총독인 플로루스(64-66)의 억압이 심해지자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로마에 깊은 증오심을 가졌고 한편으로는 좌절에 빠졌다.

 

66년 봄 성전 금고에서 거액을 꺼내 줄 것을 로마제국이 요구하자, 사제들은 황제를 위한 제물 봉헌을 중단하고 본격적인 봉기에 들어갔다. 또한 유다와 사마리아의 행정관인 알비누스와 플로루스의 부패와 불의, 잔혹함이 겹쳐 제1차 유대 독립전쟁(66-70)이 일어났다. 66년에 예루살렘에 유대인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진압에 나선 로마의 정규군은 67년 이스라엘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하고, 서기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불태워 버렸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아수라장의 장면은 바로 이 시점을 묘사한 것으로 보면 된다. 이 전쟁의 전사자 숫자만 11만 명이라고 하니 그 참혹함을 짐작할 수 있다.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루가 21,21-22)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루가 21,24)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고 장대한 도성과 장엄한 성전이 파괴되고 잿더미가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며 세상 종말이나 다름없다. 지상의 이러한 표징은 결국은 마지막 날의 전조이며 어느 날엔가는 전 세계, 전 우주적으로 벌어질 전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늘의 별들이 흔들리고, 지진과 성난 파도가 해일이 되어 밀려들 때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세상의 종말은 이처럼 무시무시한 끝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가 21,28)라는 말씀은 위로가 된다. 다른 이들에게는 공포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평화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끝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의 멸망은 세상 멸망의 징표이다. 예수님의 경고를 못 들은 체 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인간과 자연, 하느님과 영적인 세계를 외면하고 풍요로운 세상을 부르짖으며 발전에만 매달려 땅을 파헤쳐 온 인간의 무지와 탐욕은 폐기되어야 한다. 마지막이 더디 오려니 생각하고 무사안일의 미몽 속에 방종과 방탕의 길을 걷는다면 파멸 밖에 없다. 연중시기의 마지막에 우리의 마지막을 묵상하며 허리를 펴 머리를 들고 하늘을 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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