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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1-28 01:11

연중 34주 토요일

2,551
김오석 라이문도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하여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가 21,34; 36)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을 준비하는 자세를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계신다. ‘방탕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크라이팔레(κραιπαλη: kraipalee)는 복음에만 나오는 드문 단어로 술판, 혹은 술로 인한 메스꺼움, 두통, 현기증을 의미한다. ‘만취도 역시 술을 과하게 마셔 인사불성의 상태(해망;解妄)에 도달한 것을 뜻하므로, 제자들이 삼가야 할 것 세 가지 중 두 가지가 지나친 과음과 관련된 문제이다. 세 번째가 일상의 근심이다.

 


절제할 수만 있다면 술은 좋은 음식이다. 사람들의 입을 경쾌하게 변화시키고, 마음을 열도록 무장해제를 시켜 주기도 한다. 서먹한 분위기도 술잔이 한 순배 돌고 나면 훈훈해지고 정겹게 변한다.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짝사랑의 순정을 고백할 수 있게 용기를 주는 술은 이 경우에 그야말로 ()의 반열에 오른다.

 


손만 뻗으면 아니 계신 곳 없이 어디에나 계시고,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며 희생하고, 말 문 닫은 이의 입을 열게 하시고 용기 없는 자에게 용기를 주시며, 심취하면 몸속의 온갖 나쁜 것을 배출케 해 정화시켜 주시며, 무아지경의 경지로 이끄는 술은 그야 말로 신()의 경지에 있기에 주님과 동급이라고 농을 치는 사람도 있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문제는 술이란 것이 절제가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이 있듯이 결국 아무리 대단한 이도 술에 장사 없고 결국은 패가망신한다. 입이 풀리고 곰보가 예뻐 보이고 마음 속 원한과 증오가 폭발하다가 정신 줄을 놓아버리게 되는 술에 저당 잡힌 인생을 살아서는 결코 깨어있는 정신으로 살 수 없다.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그분의 얼굴을 뵈올 수 없다.

 


일상의 근심에 빠지면 하느님 말씀이 꽃피지 못하고 질식하고 만다. 지금 당신이 근심하는 것들이 무엇인가 돌아보라. 근심 걱정의 90%는 걱정해도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거나, 아무 소용없는 헛된 걱정이거나,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불확실한 것을 미리 당겨서 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란다. 세상일에 너무 빠져 있어서 물질과 권력에 욕심을 부리거나 명예욕에 기울어지면 쏟아져내려 산처럼 쌓이는 것이 근심 걱정임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공상이나 불확실한 것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릴 수 있다면 현실적으로 걱정해야 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마음속에 걱정거리가 쌓여 있음은 하느님께 신뢰가 없음을, 그분을 믿는 믿음이 실종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표징이다. 신앙을 가진 이들은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고 그저 나는 해야 할 일을 할뿐이라는 담담한 성실성이 요청된다.

 


술 취하지 않음 혹은 무엇엔가 중독되어 있지 않음과 더불어 마음의 근심 걱정을 털어버림이 기도에 열중할 수 있는 좋은 토양이다. 또 역으로 늘 기도하는 사람은 술의 절제가 가능하고 근심 걱정 없이 하느님께 의탁하며 살아갈 수 있다. ‘깨어 기도하는 사람의 특징이란 지금 여기서주어진 시간과 만남과 하고 있는 일에 정성과 최선을 다하는 태도다.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자각하게 해주며 그 분 하느님과 단 둘이서 대화하며 깊이 사귀고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에 깨어있음의 전형이다. 오늘은 시간을 내어 성체 앞에서 그분과 내밀하고 친밀한 우정의 대화에 몰입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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