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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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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11-29 22:03

대림 1주 월(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1,743
김오석 라이문도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마태 4,20)

 

예수님을 따름은 즉각적인 행동의 변화를 의미한다.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 때의 생각과 태도와 삶의 양식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음을 뜻한다. 자신만을 생각하던 우물 안 개구리의 시선이 갑자기 우물 밖 넓은 세상을 만난 경탄과 깨달음으로 고양되어 겸손하게 몸을 낮추되 저 멀리 펼쳐진 희망의 지평선을 바라보고 그리로 걸어가게 되었음을 말한다. 바로 이 때 우물 안에서의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붙들어 매는 속박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세상을 준비하던 수련의 시기였음을 깨닫고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게 된다.

 

그물로 상징되는 재물과, 아버지로 대변되는 혈육의 운명적인 관계도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의 부르심을 들은 나에게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다. 큰 것이 발견되면 작은 것은 미련 없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귀한 보물이 밭에 묻힌 것을 알았을 때 전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사지 않을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예수님께서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부르시자 그들은 즉시 자신의 재산과 직업을 미련 없이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갔다. 재산을 정리하고 행장을 꾸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듯하다. 주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 미적거려서는 안 된다. 즉시 응답해야 한다. 다만 주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우리에게 갖춰지지 않았음을 반성해야 한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그의 삶이 완전히 바뀌게 마련이다. 세례 받고 신앙에 귀의 했음에도 나의 삶의 방식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 아직 그분을 온전히 만나지 못했음을 대변할 뿐이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분을 오직 세상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쯤으로 치부하고 전적으로 그분의 뒤를 추종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위령성월의 마지막 날이다. 그리고 구세주 오시기를 기다리는 대림시기의 시작이다. 팍팍한 현실 세계의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나의 종말 신앙과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는 구세주의 기다림은 다른 말 같은 의미이다. 깨어있음과 비움이 바로 그것이다. 깨어 기다린다는 것은 철저한 비움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공염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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