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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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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3-05 01:21

사순 2주 목요일

1,354
김오석 라이문도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루가 16,24)

 

오늘 복음은 부자와 라자로가 살아생전에 특별한 관계를 맺었음을 언급하지 않는다. 라자로는 그저 부자의 대문 앞에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둘 다 죽어 거지 라자로는 하느님 나라에서 위로와 평화를 얻고, 부자는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다. 그리고 부자는 애원한다.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혀주세요!” 참 비참한 처지가 아닌가? 부자는 단 한 방울의 물을 원하고 있다. 살았을 때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를 기대하고 있던 라자로의 처지와 완전히 역전된 상태다.


그런데 부자의 애원에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 놓여 있어서 오갈 수가 없구나!” 여기에 답이 있다. 죽은 뒤에 두 사람의 관계가 역전이 되었다면 살았을 때 부자와 라자로 사이에 역시 오갈 수 없는 구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구렁은 누가 만들었을까? 당연히 부자다.


부자의 잘못이라면 라자로를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연민을 가질 수 없었고 그에게 방 부스러기 하나 나누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개들이 그의 종기를 핥는 처지였으니 아마 부자의 눈에는 라자로가 개로 보였을지 모르겠다.


인간인 라자로가, 존엄한 하느님의 숨결을 간직한 고귀한 생명이, 인간의 세계에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짐승의 세계에 내던져진 것이다. 이것이 문제였다. 부자는 짐승의 세계로 전락한 라자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곳간에 넘치는 재물을 필요한 이들과 나누지 않았다. 그 결과 완전히 역전된 장면이 드러난다.

 

나는 내 주변의 라자로를 알고 있는가? 그를 눈여겨보는 여유와 관심이 있는가? 나의 것을 나눌 용의가 있는가? 나누었는가?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는 사람,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예레 17,5-6 :오늘의 독서)

 

내 마음은 주님께 뿌리를 두고 있는가? 내가 만나는 가난한 이가 좋은 일을 주시려는 하느님의 은총임을 알아볼 수 있는 영적 각성이 있는 오늘이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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