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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2-02 00:00

대림 1주 수요일

1,908
김오석 라이문도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마태 15,32)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의 출발점이 된 예수님의 연민과 공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말씀이다. 누군가의 어려운 처지를 스쳐 지나지 않고 세심하게 살필 줄 아는 관심의 결과다. 특별히 당신 곁에 머물렀던 이들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는 말씀이기도 하다.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측은지심은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데 인간의 본성 안에 담겨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장차 우물 안에 빠지는 상황을 보게 되면 깜짝 놀라고 측은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뛰어가 구해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해서도 아니고, 친구들에게서 칭찬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니다. 측은지심은 인()의 근본이요 출발이라고 보았다.

 

점증하는 경쟁과 적자생존의 정글 같은 신자유주의 사회체제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움츠려들게 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에 골몰하느라 분주한 현대인들은 다른 이의 어려움과 고통을 돌아보는 것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의 사치로 치부하고 개인 이기주의로 무장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왜 내가 여기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숨 쉬고 살아가고 있는지 끝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나 살기 위해 이웃의 죽음을 초래하는 동물적 본능만이 우리를 뒤덮고 말 것이다.

 

시작은 연민과 공감으로부터이다. 누군가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가련하게 느끼는 측은지심의 마음이 연민이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자리에 함께 서있기를 즐겨하고, 그가 맞고 있는 비를 내게는 우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맞을 수 있는 태도가 공감이다.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궁핍하고 어려운 처지라도 아무 것도 나눌 수 없을 만큼 그렇게 가난한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았다.

 

재물을 나누는 것은 사실 나의 생명을 나누는 것이기에 쉬운 일은 아니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재능과 시간을 나누는 일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의 토대가 되는 것은 외면하지 않고 끊임없는 관심을 갖는 일이다. 그리고 응원하는 일이다. 이것을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쉬지 않고 바치는 기도야말로 우리 신앙인들이 나눌 수 있는 관심이요 응원이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우리의 자산이다.

 

시작은 미소하나 그 결과는 크고 위대한 것이 하느님의 일이다. 우리의 작은 나눔은 결국 산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빵 일곱 개와 물고기 조금으로 4천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나의 것이 너무 작은 것이라고 지레 움츠려들지 말아야 한다. 나누려고 하는 마음이 소중하다. 1m 앞도 내다보지 못할 달팽이 집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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