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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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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12-03 23:39

대림 1주 금요일

2,071
김오석 라이문도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태 9,27)

 

앞 못 보는 맹인 두 사람이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며 외치는 청원이다. 예수님은 길에서 그들의 외침을 듣고도 곧바로 그들의 눈을 뜨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님이 집안으로 들어가시자 거기까지 따라 들어간다. 그들은 끈질긴 청원과 인내를 보여야 했고 자신들의 믿음과 의지에 대하여 질문을 받는다.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예수님이 물으시자, 그들이 , 주님!”하고 대답한다. 그들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질문을 받을 것이다. 대답할 준비는 잘되어 가고 있는가? 믿음이 언제나 치유에 앞선다. 신앙인에게 소망의 성취는 믿음이 전제될 때 의미가 있는 법이다. 그들이 보게 된 것이 믿음 덕분이지, 보게 되어서 믿은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느님을 믿을 수 있도록 뭔가 징표를 보여준다면 좋겠다.’ 혹은 우리 엄마 병만 낫게 해준다면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다.’고 하느님과 흥정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 흥정은 성공하기 힘들다. 믿음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천애의 낭떠러지 길을 걷는다 해도 그저 주님의 돌보심을 믿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이다.

 

믿음은 성찰과 수련의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이 참으로 비천하고 부족한 존재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털썩 무릎 꿇고 자비를 간청하는 겸손에서 오는 선물이다. 인간이란 모두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한 존재이다. 인간이란 모두 다른 이의 자비를 통해 숨 쉬고 살아갈 여유를 갖는 존재다. 용서하고 용서받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너그럽고 관대하게 대하지 않으면 그 자신도 그리 대접받을 것이다.

 

전적인 자비의 손길 안에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할 때, 주어지는 모든 것이 감사요 기쁨으로 다가온다. 나는 이다지도 부족하고 비참하고 죄스럽고 욕심 많고 미워하고 이기적이고 정욕에 지배되어 동물적 본능을 드러내며 살아가는데, 그럼에도 내 몸은 멀쩡하고 내 다리는 걸을 수 있고 내 손은 사랑하는 이를 만질 수 있고, 내 눈은 내리는 눈을 볼 수 있으며, 내 입은 맛난 음식을 음미할 수 있으니 어찌 살아 숨 쉬는 것이 감사요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용기를 잃지 말고 끊임없이 자비를 청하는 우리의 믿음이었으면 한다. 한없이 받고 사는 하느님의 자비를 오늘 여기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다른 이들에게 기꺼이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하겠다. 자비를 입음에 감사하고, 자비를 베풀 수 있음에 기뻐하는 삶은 믿음을 지닌 사람의 특권이요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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