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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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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12-04 22:57

대림 1주 토요일

1,843
김오석 라이문도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9,36)

 

양떼에게 목자는 어떤 의미이고 존재인가? 길이고 밥이며 산성이다. 푸른 풀밭과 시원한 물이 흐르는 냇가로 이끌어 배불리 먹게 해주며 밤이 되면 이슬과 들짐승을 피해 양 우리로 데려가 지켜준다. 목자 없는 양떼란 한마디로 각자도생의 위험에 내던져진 불쌍한 처지임을 말해준다. 그런 군중들을 보신 예수님은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측은지심은 사랑이 자라나는 우물이다.

 

가련하고 가난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주목하고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울어주는 공명(共鳴)으로부터 시작하여 함께 비를 맞으며 거친 들판에 서있는 공감(共感)에 이르면 사랑은 큰 나무되어 가지를 뻗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고 예수님의 사랑 방식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닮은 착한 목자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가장 기초적이면서 소중한 덕목은 공명과 공감이다.

 

목자 없이 들판에 내팽개쳐진 양떼의 처지가 가련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고 비를 피할 우리도 없이, 들짐승의 공격에도 무방비 상태인 양떼의 처지를 생각해보라. 내가 그 무리 안에 포함되어 있다면, 그래서 앞에 가는 양의 뒤만 보고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졸졸 따라가고 있는 처지라면 한심할 뿐이다.

 

목자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악한 목자가 이끄는 양떼의 처지는 더욱 고약하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만, 악한 목자는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양들을 이용하고 잡아먹는다. “불행하여라, 양떼를 저버리는 쓸모없는 나의 목자!”(즈카 11,17) 하느님의 진노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성직자는 목자이고 평신도는 양떼인가?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누군가를 하느님께 이끄는 이는 누구나 목자이다. 누군가에게 실천과 모범으로 본을 보여야 하는 사람은 누구나 목자이다. 가정에서 자녀들을 이끄는 부모는 자녀들에게 목자다. 작은 소모임에서 모임의 구성원들을 이끄는 이는 그 모임의 목자다. 예비 신자를 끌어주는 입장에 있다면 그 사람은 목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나를 헌신하고 희생하느냐 아니면 나의 이익을 위해서 양들을 이용하는가에 따라 착한 목자와 악한 목자가 구별된다. 목자이면서 동시에 양의 모습을 사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요 신앙생활이다.

 

나는 신자들을 위한 목자로서 늘 그들 곁에 있었는지, 거친 덤불 헤집으며 좋은 길을 찾았는지 반성하는 오늘이 되어야겠다. 공명과 공감의 덕을 쌓아 신자들의 목소리와 호소에 마음을 다해 귀 기울이며 함께 울었는지에 이르면 자신이 없다. 신자들을 위해 기꺼이 나를 희생하는 착한 목자의 삶을 살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더 나아가 혹 악한 목자로 살아온 부분은 없었는지 세세하게 찾아보고, 어떻게 그것들을 개선할지 고민하는 하루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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