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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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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12-09 00:00

대림 2주 수요일

1,984
김오석 라이문도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저마다의 삶의 무게와 고난을 견디고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그 모든 이를 예수님께서 초대하신다. 당신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고 당신의 멍에를 지는 사람은 안식을 얻을 것이며 그 멍에는 편하고 그 짐은 가볍다고 하신다.

 

살아가는 일이 고통스럽고 힘겨워 포기하고 싶다면 혹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짐과 멍에가 온당한 것인지 살펴야 한다. 짊어지지 않아도 될 짐과 멍에를 붙들고 헉헉 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저 잘 먹고 잘 입기 위해 헉헉대지 말아야 한다. 우습지 않은가?

 

육적 욕망의 순환 고리 속에 파묻혀 중심을 잡고 있지 못함으로 겪게 되는 삶의 복잡성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인생에서 먹는 일이 중요하다면 적게 먹고 적게 싸는 허리띠 졸라매기를 감행할 필요가 있다. 안빈낙도! 가난함 속에 평안함을 누리며, 진리를 즐기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온전한 믿음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온유와 겸손의 덕을 현실에서 실천함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작정하고 달려들며 해코지를 하려는 무뢰배를 앞에 두고 그저 허허 여유로운 웃음만 흘리며 뒷걸음질 치기에는 세상이 너무 각박하다. 낮은 자리에 거하기를 즐겨하는 것이 겸손임을 알지만 알 수 없는 인간의 자존심은 그런 상황을 견디어 내지 못하고 불시에 툭하고 터져 나와 자기자랑과 명예욕으로 덧칠하고 만다.

 

사랑은 시간을 내고 마음을 내는 것임을 알면서도, 부모님에게 아내에게 남편에게 아들딸들에게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손 편지 한 통 쓰는 정성을 들이지 못하고 늘 쫓기듯 살아간다면 도대체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신앙을 갖고 살아가면서 그저 일주일에 한 번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신앙의 의무를 채우며 헉헉거리며 살아간다면 나에게 믿음이란 과연 무엇일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짊어지워 주시는 십자가와 멍에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무겁고 준엄한 것이다. 마음을 내어 그것을 나의 것으로 기쁘게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참 멋지고 아름답다는 감탄사만 연발하고 있을 때 그 바다는 그저 외부의 예쁜 경치에 불과하다. 훌러덩 옷을 벗어 던지고 푸른 바다에 뛰어들 때 바다와 나는 하나 되고 바다는 나를 헤엄치게 떠받드는 무대가 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예수님의 간절한 초대다. 망설일 이유가 있는가? 주저주저하며 현실적인 여러 손익 계산을 하고 있는 동안 문은 닫히고 우리의 삶은 멍에와 족쇄에 매인 힘겨운 여정이 되고 만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벼운 것은 아니나 일단 그 십자가를 메고 나면 우리의 인생이란 기쁨과 감사의 축제로 변한다. 가벼운 멍에와 짐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오늘 하루 신나게 헤엄치며 온갖 좋고 풍요로운 것들을 건져 올릴 수 있는 푸른 바다에 잠기듯, 예수님의 사랑의 바다에 풍덩 빠져들어 그분의 십자가를 기쁘게 끌어안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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