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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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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12-17 23:17

대림 3주 금요일

2,021
김오석 라이문도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태 1,20; 23)

 


오늘의 복음 말씀은 믿음의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첫째 요소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사실 하느님의 인간 구원사를 일별할 때 완전히 예외적인 존재로 드러난다. 여느 성조들이나 예언자와는 다르다. 예수님은 예견되고 기대되던 존재이지만 완전히 보통의 규범을 벗어나 그것을 초월해 있는 존재이다. 세상 만물, 모든 인간이 그러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온다!

 


둘째 요소는 그분은 하느님께로부터 오시지만, 우리 인간들을 섬기러 오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 그분의 이중적 명칭에 의해 드러난다. 그 명칭 중 하나가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예수인데 사실 히브리말 여호수아하느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또 다른 하나의 명칭은 임마누엘인데 마태오는 이것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로 번역한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시어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신다. 그리고 그분은 하느님을 대신하여 나타나거나, 하느님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하느님이신 동시에 인간이시므로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시다.

 


셋째 요소는 처녀인 마리아가 남자와 관계를 맺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하였다는 사실이다. 존재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무엇이 만물을 있게 하는가에 대한 깨달음의 문제다. 세상 만물을 있게 하고 그 모두를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창조주 하느님이심을 믿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혹이 없다.

모든 것이 성령이신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짐을 믿는 이는 자연의 순리와 법칙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거룩한 것이고 하느님의 일이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부부가 맺는 사랑의 행위도 당연히 거룩한 것이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사건이다. 마리아의 처녀 잉태는 믿음의 문제이고 고백의 문제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는 천사의 말에 비추어 보면 의로운 사람인 요셉도 사실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두려움의 근원은 무엇일까? 잃어버림, 상실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혹은 고통, 아픔, 불편함이 닥칠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잃을 것이 많으면 두려움도 크다. 그렇다면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두려움도 없다는 말이 성립된다. 소유하지 않으면 두려움도 없다.

 


문제는 소유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이라는데 있다. ‘존재양식에 답이 있다. 나의 것이라 생각하면 불안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나의 것이 아니라 오직 선물일 뿐이다. 목숨마저 소유의 개념으로 사고하기에 죽음은 최고의 두려움으로 인간에게 각인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면 달라진다. 가지는 것이 아니라 누리며 살아야 한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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