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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2-21 00:17

대림 4주 월요일

1,921
김오석 라이문도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루가 1,39)

 


역사적인 만남이다. 세기의 조우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와 새로운 시대(신약)를 여는 예수님의 만남이다. 선구자와 구세주의 만남이다. 설레고 흥분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우리의 관점일 뿐이다. 시간을 되돌려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난 그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긴장과 초조함이 묻어난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 라고 응답은 했으나 혼전 임신으로 파혼의 위기와 죽음을 맞을지도 모를 운명이니 마리아는 초조감과 긴장감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진 여정이었고 그 끝은 사촌 언니 엘리사벳과의 만남이었다.

 


삶의 연륜은 값진 것이다. 말라 비틀어진 고목에서 새순이 솟는 기적처럼,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만큼 늙은 몸에 하느님의 은혜로 생명을 잉태한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고민을 헤아릴 수 있었다. 또한 기쁨으로 뛰노는 뱃속의 아기 요한의 춤사위는 엘리사벳을 감응케 했고 마리아의 몸에 일어난 성령의 놀라운 힘과 작용을 감지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성령의 감도를 받은 엘리사벳의 환성이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라는 외침이었다. 그리고 마리아가 얼마나 좋은 몫을 선택했는지 일러주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가 1,45)

 


행복은 재물이나 부귀영화를 쫓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침 햇살에 영롱하게 빛나는 이슬방울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부귀와 영화와 권세와 향락이 복()같아 보이지만 착각이다. 잠시 후 정신이 들면 사라지고 말 신기루일 뿐이다. 온 세상의 부를 다 거머쥔 재벌도 하루 네 끼 먹는 것이 아니요, 천하의 미색을 자랑하는 양귀비도 세월이 흐르면 쭈그렁 할머니로 변하며 조금 더 지나면 한줌의 흙이 되고 만다.

 


그래도 좋으니 사람들은 살아생전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싶어 한다. 그것이 헤어날 수 없는 늪이라도 좋고, 불을 찾아 날아드는 불나방의 처지가 된다 해도 좋다고 한다. 아서라 말아라! 열심히 땀흘림으로써 주어지는 선물이라면 몰라도 헛된 꿈을 꾸는 것은 신앙인들의 몫은 아니다. 복은 어떤 상황에서든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 위에 주어지는 것이다. 흔들림 없는 믿음이 평화를 주고 평화는 기쁨이 되고 감사하며 사랑하게 해준다.

 


성모님은 마굿간에서 아기 예수를 낳을 때도, 이집트 피난의 머나먼 고난의 여정에서도, 아들을 잃고 사흘 밤낮을 헤매었어도, 장성한 아들이 출가하여 떠돌이가 되었을 때도, 그 아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십자가를 짊어졌을 때도, 십자가 위에서 숨을 헐떡이며 죽어갈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하느님을 믿는 그분의 믿음은 가시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고통스러웠으나 평화가 충만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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