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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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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12-22 03:12

대림 4주 화요일

2,695
김오석 라이문도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가 1,47-48)

 


오늘 복음은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드리던 가장 아름다운 기도 중의 하나인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이다. 나자렛의 어린 시골 처녀의 입에서 겁도 없이 튀어나온 이 노래는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불러오던 민요였다. 불임의 고통 중에서 하느님의 은혜로 사무엘을 잉태하게 된 구약의 한나의 노래’(사무엘 상 2,1-10)와 내용이 매우 비슷하며 여기에 근원을 두는 전래 민요이기 때문이다. 마니피캇은 마리아의 노래이면서 참되게 하느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래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마니피캇의 내용을 숙고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었던 야훼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마니피캇은 자신이 가난하고 미천한 존재임을 분명히 알고 두근두근 설레는 가슴으로 다가와 당신 앞에 무릎 꿇는 이들을 곁에 두시고자 하는 야훼 하느님을 향한 찬양노래다. 자신이 누리는 기쁨과 행복이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선물이요 은총임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찬양노래다.

 


마니피캇은 가난한 이들이 체험한 하느님의 구원과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미의 노래며 미래에 다가올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그리며 부르는 희망가다. 철저하게 자신이 가난한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사람, 하느님을 목말라하고 그분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기다리는 사람은 하느님의 손길을 쉽게 느끼는 법이다. 반면에 능력이 있어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권력과 부에 도취된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의지하는 마음이란 도대체 남아있기 어렵다.

 


그러기에 마니피캇은 야훼 하느님의 행하심을 이렇게 노래한다. “그분은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이들을 흩으시고,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은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은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다.”(루가 1,51-53)

 


기득권자들이나 지배자들이 이 노래를 들으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혁명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 권력자와 천민의 처지가 역전되도록역사하시는 야훼 하느님을 노래하는 민중들이 두렵지 않다면 분명 그들은 선정(善政)과 공정한 분배에 온힘을 다하는 지배자와 기득권자들일 것이기에 말이다. 그러나 역사 안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 백성들의 대부분이 신자였던 남미 여러 나라의 혁명, 특히 니카라과 혁명의 한 복판에서 민중들이 불렀던 출정가가 바로 마니피캇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회 모순으로 인한 불의와 부정, 억압과 착취, 거짓과 불신, 후안무치의 비상식이 횡행하면 개개인 삶의 질은 나락으로 곤두박질한다. 오염된 물에 사는 고기는 물 자체가 정화되지 않는 한 더러운 물을 먹고 질병에 허덕이며 살아야 하듯, 민족과 사회, 세상의 고통과 아픔이 치유되지 않고서는 개인과 가정이 온전한 평화와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난 아직 괜찮아라며 무관심할지 모르나 시간문제일 뿐이다. 다음 차례가 바로 당신이다. 세상이 곧 개인이다. 하나로 묶여 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한 변혁적 행동은 외면하고 신비적 언어로 가득 찬 것이 영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복음으로부터, 아니 마니피캇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특히 레지오 단원들은 매일 까떼나를 바치며 마니피캇을 노래하는 자신들의 기도가 공허한 빈 소리로 허공을 헤매지 않도록 정치 사회의 불의와 부정에 대해 행동하는 믿음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권력자와 세상의 거짓과 불의를 지적하며 예언직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딴죽 걸고 비난하고 뒷담화하는 무지한 그리스도인은 이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출애굽의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언자들에게 영감을 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은 어땠는지 찬찬히 들여다 본 다음에 말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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