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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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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12-23 02:54

대림 4주 수요일

2,051
김오석 라이문도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루카 1,63)

 


자신이 누구인가를 소개할 때 맨 먼저 말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이다. 때문에 사람의 이름을 짓는 것은 그의 정체를 규정하는 일중에 하나다. 딱지 붙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그 딱지로 대상의 정체를 고착화 시켜 이미지화 하려는 의도가 대부분이다. 때때로 이런 딱지 붙이기가 부정적인 측면에 치우칠 때 치명적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종북’ ‘좌빨이라고 이름붙이면 얼마나 선정적이고 명확한 딱지가 되는가? 기득권에 반대하고 권력에 저항하면 어김없이 종북이나 좌빨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딱지가 뒤따른다. 본당 신부인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신자 몇몇은 종종 뒷 담화를 하며 나더러 좌빨 신부라고 하는 모양이다. 간혹 내가 말하는 현 정부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언사들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종북 신부라고 하지 않는 것을 차라리 다행이라고나 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성경을 면밀하게 읽고 묵상하며 삶의 지침을 얻고자 하는 사람,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그리워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철저히 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좌파가 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라 하겠다.

 


오늘 즈카르야는 자신의 아들을 가문의 후손으로 입적하는 의미로 이름을 짓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따라 즈카르야라고 이름 지으려는 것을 만류하고 아기 이름은 요한이라고 명명한다. ‘요한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시다.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푸신다는 의미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의 품으로 다시 데려올 운명을 지신 선구자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선구자의 길은 사람들을 회개로 이끌며 하느님 말씀에 순명하게 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설혹 복음 때문에 비난받고 손해를 입는다 해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 선구자이며 이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며 마음의 옷깃을 여미며 삼가 준비하는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자세다. 대림시기는 우리로 하여금 선구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살아야 하는 때임을 강조한다.

 


선구자의 길을 외롭고 고통스럽다. 확고한 신념과 뚜렷한 가치관을 지녀야 한다. 사람들이 외면하고 관심 없어 하는 일들을 새로운 발상으로 다시 살려내는 일은 말은 쉬워도 그 실천은 참 어렵다. 진실과 진리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며 정의와 평화를 위해 투신하는 외로운 선구자의 삶은 그러기에 눈 쌓인 높은 산 정상의 한 마리 외로운 늑대와 같다.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으며 자기 가문의 이름 외에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 세례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내가 받아들인 성인의 이름을 나의 새로운 이름으로 한 이상 그 성인의 삶을 본받아 살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새로운 이름을 주신 하느님의 뜻에 걸맞게 살려고 애쓰는 모습이 곧 완덕을 향한 수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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