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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3-08 21:05

사순 2주 토요일

2,000
김오석 라이문도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루가 15, 18)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다. 그 내용을 세세히 기록한다면 한권의 책이 될 것이다.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어리석음 속에 깨달음이 길이 있다는 희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이 눈앞의 것에 홀리면, 손에 쥔 것에 정신을 잃게 되면, 그것을 탐닉하느라 자신을 잃어버린다. 자신을 잃으면 존재의 뿌리인 하느님도 망각할 수 밖에 없다. 재물, 권력, 명예, 지위, 학력 따위가 멀쩡한 사람을 눈멀게 하는 것들이다.

 

작은 아들은 모든 것을 잃고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즉 손에 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자가 되었을 때 눈을 뜨고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을 보게 되었고, 자신의 초라함을 알게 되었다.

 

수도자들이 침묵과 고독의 수도원으로, 깊은 산 속으로 숨어드는 것이나, 은수자들이 사막과 광야로 나가는 이유는 바로 빈털터리가 된 돼지우리의 작은 아들 마음을 느끼기 위함이리라!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풍요롭고 감사한 것인지를 깨닫기 위함이리라!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가난함이 알몸으로 세상에 온 인간 본래의 초라한 모습을 알게 해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준다. 세상 것들과의 인위적인 단절에 의한 철저한 고독 가운데 우리는 세상 안에서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는 삶의 기쁨, 천국을 미리 사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사순 시기는 머리를 들어 “어서 아버지께 돌아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부르짖는 때이다.

오늘이 어떤 이에게는 아버지께 돌아가는 첫 발걸음을 떼는 그런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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