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2-25 23:25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12.26)

1,983
김오석 라이문도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사도7,55)

 


예수님의 성탄을 경축하고 기뻐했던 날이 어젠데 오늘을 교회의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의 순교를 기념한다. 아마도 교회가 스테파노의 순교를 하늘나라에서의 새로운 탄생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은 지상에서 가난으로 탄생하시고, 스테파노는 하늘에 순교로 탄생하였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초대 교회 공동체 내에 식량배급 문제로 갈등이 생긴다. 그러자 식량 배급을 전담할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7명의 봉사자(부제)를 선발하게 되는데 이들 중 대표자 격으로 스테파노의 이름이 나타난다. 애초에는 식량의 공정 분배를 위한 봉사자들이었으나 공동체가 성장하면서 그 역할이 점점 확대되고 복음을 선포하는 일도 이들의 주요 소명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도행전 7장은 스테파노가 유다인의 최고 의회에서 설교한 내용이다. 하느님의 구원역사와 하느님의 사람들, 즉 예언자들을 끊임없이 박해해 온 유다인들을 질책한 스테파노의 설교는 급기야 의회 의원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그들이 달려들어 스테파노를 돌로 쳐 죽이는 장면이 오늘 독서의 내용이다.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사도 7,58)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하고 기도하였다.(사도 7,59)

 


순교자를 라틴말로 Martyr라고 한다. Martyr란 증거자를 말한다. 자기를 주장하고 욕심을 내세우는 사람은 증거자가 될 수 없다. 자기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추구하다가 죽은 사람을 아무도 증거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겸허하게 자신을 비우고 죽이는 사람이 증거자가 된다. 하느님의 영인 성령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우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겸허하게 자신을 비우고 죽는 삶 자체는 언제나 순교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 자기를 고집하고 내세우는 사람 안에서 성령은 언제나 침묵한다. 아니, 자기 목소리가 큰 사람은 바람소리 같은 성령의 속삭임을 들을 수 없다.

 


이 시대는 하느님이 침묵하는 시대다. 인간들의 목소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제각기 자기 목소리를 내느라 다른 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거기에 생명의 길은 없다. 하느님이 침묵하고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세상은 망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이 음성이 인간의 재잘대는 말에 뒤덮여 숨을 못 쉬는 세상은 불길하다. 스테파노처럼 하늘이 열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열려있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을 전할 이 시대의 예언자, 순교자, 증거자가 필요하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 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사도 7,56) 스테파노는 열린 하늘에서 십자가에 처형된 사람의 아들을 보았다. 예수님처럼 다른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곳이 천국이다. 천국은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 다른 이를 위해 고통을 받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다른 이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에게 천국의 문은 활짝 열린다. 아니 그가 있는 곳이 이미 천국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