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12-28 00:00

성탄 팔일 죽제 내: 죄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1,893
김오석 라이문도

헤로데는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마태 2,16)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은 얼마나 예쁜가? 맑은 눈동자, 솜털이 보송보송한 보드라운 볼하며 방긋 웃는 모습은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깨끗하게 씻어주는 청량제다. 아이를 예뻐한다고 생각했으나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그 자체로 예쁜 존재들임을 알게 되었다. 때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맑고 청정한 하늘같은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죄 없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가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 버린 장면은 권력에 눈이 먼 악독한 이의 만행이다. 참담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가 연상된다. 죄 없는 이의 무고한 죽음을 허락하시는 하느님도 야속하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죄 없는 이들의 무고한 희생에 대해 성서가 말하는 대답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마태 2,17)

 


하느님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지 않으셨다. 아니 막을 수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이해할 수 없지만 죄 없는 이들의 무고한 희생도 하느님의 신비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다. ‘악한 인간이 저지르는 악행에 하느님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이 문제 즉, ‘무죄한 이들의 무고한 희생과 죽음에 대한 답은 잘 모른다가 정답이다. 하느님의 신비이기에 인간은 대답할 수 없다.

 


그러나 죄 없는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을 대신해 순교했다는 사실은 예수님 역시 그 탄생부터 박해와 고난의 길을 걸으시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말도 떼지 못하고 저항할 힘도 없는 가장 약한 존재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예수님을 위해 죽고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순교했다는 사실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교훈으로 삼을 수 있겠다.

 


암담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기꺼이 하느님의 계획에 응답하고 고난의 길을 떠나는 요셉의 결단에서 신앙인이 가야 할 일상에서의 순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반면 자신의 자리와 기득권을 지키고자 어떤 포악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헤로데에게서 이기심으로 뭉쳐진 돌덩이 같은 우리들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하겠다.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앞 뒤 재지 않고 달려든다면, 신앙까지도 나에게 손해가 될 경우에는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라면 말 한마디 못하고 작은 저항의 손짓도 없이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의 계획에 죽음으로 응답한 무죄한 아기 순교자들에게 용서를 청해야 할 것이다.

 


주님, 우직하게 언제나 당신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온전히 당신의 구원계획에 헌신한 요셉을 닮게 하소서.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어린 아기들이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것처럼 저희들도 당신의 계획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